[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진짜 어른

입력 2013-08-08 18:06


덥다고 찬 바닥 찾아 이리저리 뒹굴다가 TV 리모컨을 건드렸다. 뉴스가 나온다. “여야가 다자회담이냐, 단독회담이냐를 놓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단독회담을 주장하는 민주당과 5자회담을 고수하는 청와대가 번갈아가며 핑퐁게임을 벌이는 형국입니다.” 듣고 있자니 머릿속까지 열이 뻗친다. 다음 뉴스들도 갑갑하긴 마찬가지다. 재벌총수의 비자금 수사, 유통업계의 갑을 논쟁, 가짜 친환경 채소. 참 싫증난다싶어 꺼버리려는 순간, 탁 트인 합창소리가 마음을 잡아끈다. “메아리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시원하게 등물 한 바가지 뿌리고 귓속까지 말끔하게 씻은 기분이다.

지난 5일 서울의 한 녹음실에서 가수 조용필씨가 데뷔 이후 처음으로 참여하는 음악 페스티벌에 함께할 인디밴드 가수들과 자신의 히트곡 ‘여행을 떠나요’를 불렀다고 한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대선배와 후배가 한목소리로 노래하는 훈훈한 모습. 이어지는 취재기자의 말에 꽁하니 뭉쳐 있던 명치끝이 확 풀린다. “특히 이 가운데 두 팀은 처음으로 음악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인디밴드입니다. 대선배가 출연료 대신 자신들의 무대를 마련해줬다는 소식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말합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채널을 돌리다 보니 이번엔 스포츠 뉴스가 눈길을 잡는다. 6일 마산구장 마운드에 현역 최고령 투수, LG 트윈스의 류택현(43) 선수가 서 있다. 한국 프로야구 통산 최다 홀드, 투수 최다 출장 기록을 새로 쓰는 순간이다. 1994년 데뷔한 그는 2007년 방출의 설움을 딛고 홀드왕이 되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부상과 또 한번의 방출. 2010년 팔꿈치 수술 후, 모두가 끝났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당당히 마운드로 돌아왔다. 한 경기에서 그가 던지는 공은 10개 남짓. 그 하나하나에 그의 인생과 신념이 담겼다. “야구공을 내려놓는 그날까지 야구 앞에서 겸손할 것이다.”

강퍅한 현실 앞에서 애태우는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건널 다리가 되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내어주는 사람과 화려하지는 않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꾸준함으로 후배들의 미래가 될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 무대에서, 마운드에서 각자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다 하는 진짜 어른의 모습. 시들어가는 육체에 세월만 쌓아놓고 자기 이익과 권력만 탐하는 생물학적 어른들에게 질려버린 오늘, 두 사람의 이야기는 내일은 다르리라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참 좋은 뉴스였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