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욱일기
입력 2013-08-08 18:35
히노마루라 불리는 일장기는 1854년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일본 상선의 표식으로 도입됐다. 개항 이후 메이지 정부는 1870년 1월 27일 일장기를 국기로 삼는 포고를 발표했다. 흰 바탕에 붉은 해를 그린 문양은 일본 고대 말기인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사용돼 왔고 에도 시대 당시에도 풍어나 길조를 비는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일장기의 흰 여백을 붉은 햇살 무늬로 꽉 채운 욱일기(旭日旗)도 민간 축제 등에서 오랫동안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욱일기 사용이 법제화되는 과정은 처음부터 군부와 밀접한 연관을 가졌다. 메이지 정부는 1870년 5월 태양에서 16줄의 광선을 내뿜는 욱일기를 육군기로 제정했다. 에도 시대 말기 분열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이던 각 번이 통합된 뒤 새 통합 육군을 상징하는 깃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일본 해군도 1889년 육군기를 변형한 욱일기를 군기로 정했다.
일본군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욱일기는 군국주의와 무단통치, 참혹한 전쟁의 상징이 됐다. 패전과 함께 일본군이 해체되면서 욱일기도 사라졌다. 그러나 1952년 자위대가 창설되면서 욱일기가 부활했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일제 해군이 사용하던 16줄 욱일기를, 육상자위대는 과거 장군기로 쓰이던 8줄 욱일기를 군기로 지정했다. 치안이 목적인 자위대가 제국주의 군의 상징물을 공공연하게 차용하는 것은 군 보유를 금지한 일본 평화헌법의 정신에 위배된다.
그런데도 욱일기는 점차 일본 민간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8·15가 되면 제국주의 군복 차림에 칼을 찬 일본 퇴역군인들이 욱일기를 앞세워 야스쿠니 신사를 행진하는 모습은 주변국에 큰 충격을 줬다. 비단 우익뿐 아니다. 일본 국내 경기에는 욱일기 문양을 변형한 각종 응원기가 등장한다. 정부가 과거사를 깔아뭉개니 국민들이 따라하는 것이다. 급기야 서울에서 지난달 말 열린 동아시아 축구대회 한일전에까지 욱일기가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한 술 더 떠 욱일기 사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아예 공식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해 욱일기를 소지하지 않도록 관람객에게 권고하더니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독일 정부가 독일의 축구경기에 나치의 깃발인 ‘하켄크로이츠’를 마음대로 흔들어도 좋다고 공표하면 서방 국가에서는 난리가 날 것이다. 일본 정부는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