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原電 수출 위해 해야 할 일들

입력 2013-08-08 18:34


“정부와 업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 터키 원전 수주 때처럼 처신하면 판판이 깨진다”

한국전력에 워룸(War Room)이 들어섰다. 2009년 5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부터 원전사업 입찰 자격을 얻었을 때다. 서류를 제출한 6개 업체 가운데 미·일 컨소시엄, 프랑스 컨소시엄, 한전에게만 입찰 자격이 주어졌다.

당시 김쌍수 한전 사장은 전장에 나가는 장병처럼 일하라고 독려하면서 워룸을 마련했다. 관련 회사 임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공간이었다. 미국 영국 한국의 전문가 80여명이 각자의 능력에 맞게 워룸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였다. 골리앗도 한 명이 아니었다. 원전 수출 시장에서 강국인 미·일 연합군, 프랑스와의 결전이었다. 당시 원전 공급국은 미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 캐나다 등 5개국뿐이었다. 한국은 원전 수주전에 뛰어든 새내기였다.

예상을 뒤엎고 한전이 승리했다. 그해 12월 양국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UAE 원전사업 주계약서에 서명한 주인공은 한전이었다. 첨단 과학기술력, 자금력, 정치·외교력이 망라된 국가대항 총력전에서 원전 강국들을 녹아웃시킨 쾌거였다. 전 세계는 한전의 승인(勝因)을 분석하느라고 한바탕 난리를 떨었다.

원전 수주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달라졌다. 중동 산유국(産油國)에 전력을 수출하는 산전국(産電國)으로 부상한 것이다. 수주금액 21조원, 관련 산업 파급 효과 30조원, 일자리 창출 11만개 등 경제적 실익이 엄청나다. 원전 운영·정비 지원 등 부수적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런 한국의 원전 수출 전선에 큰 변수가 생겼다. 한국과 터키는 정상회담을 통해 정부간 협상을 벌일 만큼 한국의 원전 수주가 유력한 상황이었다. 원전 수출을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운 이명박정부도 수주전에 매달렸다.

하지만 한국은 터키 원전 수주전에서 지고 말았다. 미국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원전 시장의 패러다임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발주국이 자금을 조달했으나 터키 사업은 원전 공급자가 공사비를 대는 조건이었다. 공급자가 필요한 재원을 금융시장에서 마련하고 터키 전력시장에서 장기간에 걸친 전기 판매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터키에 대한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일 정도로 너무 낮았다. 전력시장도 다른 나라보다 불안정한 편이었다. 이를 감안해 우리 정부는 터키 정부에 보증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전을 짓기 위해 재원을 조달하려고 해도 정부 보증이 없으면 장기간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국제 금융기관의 평가였다.

일본이 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일본 정부가 사업 리스크를 안고 정책적으로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터키 정부에 보증을 요구하지도 않고, 조건이 좋은 재원 마련 계획을 제시해 지난 5월 우선협상권을 확보했다고 한다.

세계 원전 업계도 다른 분야처럼 피를 말리는 경쟁관계 속에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합종연횡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중수로 원전 공급의 대표주자였던 캐나다는 국내 사업에만 매진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다. 기술력은 떨어지지만 천문학적인 외환보유고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은 원전 공급국 진입을 시도한다.

일본 대지진 참사 이후 한때 원전 시장이 위축된 적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이 원전 도입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2030년까지 300여기가 건설될 것으로 전망된다. 1000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시장이다.

패러다임이 변한 원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정부와 원자력업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 비리로 얼룩진 원자력업계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원전 수출을 위한 정책금융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해외시장에서 뛸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원전 수출 금융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도 지정해야 한다. 터키 원전 수주 때처럼 처신하면 판판이 깨진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