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7. 교회 : 새로운 피조물] ④ 교회와 구원

입력 2013-08-08 17:23 수정 2013-08-08 20:00


교회는 구원의 주체 아닌 ‘하나님의 도구’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는가? 누구나 자주 묻는 질문이다. 기독교는 자기해탈을 추구하거나, 명상을 위한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구원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구원은 대단히 예민한 주제이기도 하다. 교회와 구원의 관계를 보기 위해서 먼저 ‘교회’를 정의해야 한다. 오늘 강좌에서 말하는 교회는 ‘가시적 교회’이다. 즉 우리가 역사에서 만나는 현실의 교회를 말한다. 그러면 몇 가지 초점을 중심으로 대화를 해보자.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가톨릭은 오랫동안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입장을 견지했다. 가톨릭은 계급적인 교권 구조를 발전시켰고, 교회론도 교회를 구원의 유일한 기구로 여기는 상당히 배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가톨릭은 교회 밖에서도 구원의 가능성을 열었다. 교회에 속하지 않거나, 스스로 기독교인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경우에 따라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익명의 그리스도인’ 사상도 받아들였다.

한편 개신교는 교회를 구원의 방주로 생각하며 교회를 유일한 구원의 수단으로 간주한다. 구원을 교회의 범위 안에서 생각하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개신교는 다양한 교파와 목회자의 신학적 입장에 따른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단일한 입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교회와 구원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과는 별개로 개신교에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목회자나 신자들이 자신이 속한 교회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목회자나 신자들의 모든 헌신은 자신이 속한 교회에 집중된다. 이런 태도는 흔히 폐쇄적 ‘교회주의’로 발전한다. 즉 신앙생활의 최종 목적이 자신이 속한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다. 이런 사고는 ‘교회와 구원’을 동일시 여기는 사고를 만들게 된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교회가 양적으로 많아지고 성장한다고 해서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 역사, 자연을 포함한 총체적인 구원의 완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은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실현된 상태이다.

한편 지상의 교회는 불완전한 상태에 있다. 교회는 온전한 의인들의 모임이 아니다. 교회는 ‘죄인 공동체’(communio peccatorum)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성인 공동체’(communio Sanctorum)이다. 따라서 교회 홀로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모두 감당하지는 못한다.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해서도 안 되고, 구원의 유일한 기관이라고 할 수도 없다. 만약 교회가 구원을 독점한다면 하나님은 오직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사역을 펼쳐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제한하는 것이다.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

구원의 주체는 교회인가, 하나님인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는지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구원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봐야 한다. 성경은 ‘교회 자체’를 거룩하다고 하지 않는다. 더욱이 교회 자체를 구원의 ‘주체’로 말하지 않는다. 교회가 귀하고 거룩한 것은 언제나 하나님과 연관이 될 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성령의 전이며, 하나님의 영광이다. 교회가 구원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주체는 오직 삼위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여 성육신하셨고, 예수님이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다. 성령의 피조세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교회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이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도상에 있다. 하나님의 구원 활동이 교회 안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성령이 계신 곳에 구원이 있다. 교회가 있는 곳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많은 과오를 범했고, 역사 속에서 무기력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야 했다. 교회가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계속된다. 교회가 분열해 서로 싸우고, 교회 지도자가 세상과 타협하고, 교회가 본연의 역할을 망각할 때도 하나님은 피조물의 구원을 위해 섭리하신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질시해서는 안 된다. 북한에서도, 이름 모를 오지에서도, 교회가 상상하지 못하는 역사의 외진 곳에서도, 성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구원의 역사를 펼쳐 가신다. 성령은 넓게 활동하신다. 교회를 통해서도 활동하시고, 교회를 넘어 사회와 역사 속에서도 활동 하신다. 교회는 정의, 사랑, 평화, 고통 받는 자를 위한 성령의 구원 활동에 동참하고 순종해야 한다. 교회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성령의 활동을 항상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교회는 구원의 최일선에 서있다

교회가 구원의 유일한 기관은 아니지만, 교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의 기관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과 역할이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어떤 사회단체나 인간의 조직도 교회와 비교될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전조로 유비될 수 있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잘못된 판단으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기에 가장 좋은 공동체인 것은 틀림없다. 모든 신자들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해서 만날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가장 선봉에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될 수 있도록 이 세상의 악과 싸워야 할 과제를 가진다. 그렇기에 지상의 교회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전투의 교회’(Church Militant)이다. 교회는 예수님에게서 시작되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순례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지금 현재의 시간은 교회에 주어진 ‘교회의 시간’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구원의 최일선에서 싸우며 악에 굴복하지 않는 ‘승리의 교회’(Church Triumphant)가 되어야 한다.

김동건 교수<영남신대 조직신학, 저자연락은 페이스북 facebook.com/dkkim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