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창조경제 바탕은 인문학… 동북아평화에도 중요 역할”
입력 2013-08-07 18:21 수정 2013-08-07 15:23
박근혜 대통령은 7일 “인문학이야말로 인간과 역사에 대한 통찰력으로 시대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변화의 토양과 토대를 제공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인문학 예찬론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평소에도 큰 관심과 애정을 보였던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이시형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장,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 소설가 박범신·이인화씨,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 등 인문·정신·문화계 석학 13명과 오찬을 함께했다. 무려 1시간45분 동안 이들과 인문학 중흥의 필요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풍요로운 인문학의 토양이 있어야 개인이든 국가든 성숙하게 발전할 수 있다”며 “인문학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 융성을 새 정부의 4대 핵심 국정기조의 하나로 삼고 있는데 그 근간이 바로 인문학”이라며 “앞으로 새 정부는 우리 국민이 인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인문학적 자양분을 충분히 제공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인문학이 창조경제 구현의 바탕이라고도 했다. 그는 “인문학적 바탕 없이는 창조경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는 따로 가는 게 아니라 같이 가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라고 생각한다”며 “인문학은 인간을 이해하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삶의 길을 밝혀주는 지혜의 등불로, 저도 과거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낼 때 고전과 인문학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박 대통령은 현안을 폭넓게 인문학과 연결해 설명했다.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을 거론한 뒤 “거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인문, 문화적인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또 “자꾸 말을 폭력적으로 쓰다 보면 생각도 폭력적으로 거칠어지는 것 같다. (말과 생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었다”며 최근 야당에서 불거진 막말 논란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연구·개발(R&D) 작업에 대한 평가가 과거 기준에 머물러 있다는 참석자들의 지적에는 “어떻게 평가 기준을 가져가야 (정부) 지원이 소기의 목표대로 쓰일 수 있는가에 대해 재정립하면 좋겠다”면서 “정부가 (바뀐) 정책을 펴도 공무원 사회에서 평가 기준이 옛날하고 똑같으면 절대 그 방향으로 안 간다”고 언급했다.
특유의 ‘썰렁 유머’도 구사했다. 박 대통령이 “보험금을 정말 빨리 지급한다고 자랑하던 보험회사가 있었는데 그 회사가 입주한 30층 빌딩에서 한 사람이 자살하기 위해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유리창으로 이를 본 직원이 그 사람이 떨어지기도 전에 가족들한테 보험금을 입금했다”고 했지만 좌중에서 몇몇의 ‘조용한 웃음’만 나왔다. 이에 한 참석자가 “대통령 유머가 썰렁하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다”고 ‘위로’하자 박 대통령은 “유머가 썰렁하지 않으면 안 우습지 않으세요”라고 말해 오찬장에 한바탕 큰 웃음이 터졌다.
박 대통령은 오찬 전후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고, 김원중 건양대 교수에게는 “보내주신 책(매일 읽는 중국 고전 1일1독) 잘 읽었다”며 사의를 표했다. 한 참석자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인용해 “‘영원한 여성이 우리를 고양시킨다’는 마지막 대목이 있는데 대통령께서 영원한 여성의 이미지를 우리 역사 속에 깊이 각인하셔서 우리 역사가 한층 빛나기를 기원한다”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오찬은 박 대통령이 후반기 국정운영 기조로 제시한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위한 초석으로서 인문학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마친 뒤 외부 인사들과 처음 만난 일정이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과 면담을 요청하는 분이 많지만 휴가 이후 가장 먼저 인문학 분야 인사들을 직접 선택해서 만난 것은 이례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대통령의 높은 관심을 보여준 것”이라며 “대통령이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흠뻑 빠진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진행됐다”고 전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