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하다 날새는 ‘바게닝 정치’… 국민은 속 터진다

입력 2013-08-07 18:24

여야가 중요한 정치적 사안을 놓고 지루하게 줄다리기에만 매달리는 ‘바게닝(Bargaining·협상) 정치’에 함몰돼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정치 상황을 보면 마치 사전조율 작업이 주(主)가 된 느낌이고, 정작 사안의 본질을 다룰 땐 여야 모두 진이 빠지고 국민적 관심도도 떨어지면서 유야무야로 끝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권에서조차 “본말이 전도된 정치”라는 자성 목소리가 무성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권의 회동 문제만 해도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단독회담 제안에서 시작돼 이후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3자 회담’으로, 다시 박 대통령의 ‘5자 회담’ 제안으로 맴돌다 7일 결국 김 대표의 ‘2자 회담’으로 원점 회귀했다. 그런 사이 정국은 계속 얼어붙은 채로 시간만 흘러갔고 국민들의 짜증 지수만 높아졌다. 이를 두고 국회 관계자는 7일 “개성공단 재개 문제를 놓고 남북한이 핑퐁식 제안을 거듭하는 걸 정치권에서 꼴사납다고 비판했는데 지금 청와대와 여야가 하는 꼴이 딱 그 모양 아니냐”고 지적했다.

현재 진행 중인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국정조사 특위 활동도 의사일정 조율과 증인·참고인 채택을 둘러싼 온갖 잡음으로 몇 주 동안 시간을 끄느라 정작 중요한 사실관계 확인은 뒷전으로 밀렸다. 국회 주변에선 “국정원 국정조사는 뭘 조사했는지 아무 기억이 없고 십 수 차례나 되풀이된 새누리당 권성동, 민주당 정청래 간사의 일정 조율 기자회견 장면만 남아 있다”는 비아냥거림이 나돌 정도다. 또 “진실은 안 보이고 미디어를 타려는 특위 멤버들의 ‘카메라 정치’만 보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협상이 지루하게 오래 이어지는 건 결국 주요 정치인들의 정치적 자신감이 부족한 것과 무관치 않다. 또 상대를 신뢰 못해 혹시 덫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함정 정치’에 대한 과도한 경계심도 협상이 불필요하게 길어지게 하는 요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요즘 정치인들은 약간의 불리함이나 의심을 정면돌파하기보다는 사전협상에만 매달려 불리함과 의심을 걷어내려는 안전판 정치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바게닝 정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가 소탐대실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여론조사기관 한국사회발전연구원의 서경선 원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협상이 길어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결국 국민들은 양쪽 협상 당사자 모두에서 고개를 돌릴 것”이라며 “지금은 ‘작은 기술’에 의존하는 정치보다는 ‘큰 기술’, ‘큰 정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