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두루마리 풍경화 속으로… 지도에도 없는 울진 신선계곡 트레킹

입력 2013-08-07 17:25


얼마나 멋있으면 신선계곡이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지도에도 없는 신선계곡은 경북 울진의 백암산 북동쪽 깊숙한 골짜기 속에 위치한다. 영양·울진 경계에서 88번 지방도를 타고 롤러코스터를 타듯 구주령 고갯길을 서너 바퀴 돌면 하얀 구름을 머리에 인 해발 1000m 높이의 백암산(白巖山)이 금강송 사이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백암산 아래의 깊고 푸른 계곡이 바로 신선계곡이다.

신선계곡은 초록색의 소(沼)와 탕(湯), 그리고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절경의 연속이다. 소는 물이 고인 깊은 못을 말하고 탕은 폭포 아래에 있는 못을 이르는 말. 1960년대 말 화전민들이 떠난 후 신선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험준한 오솔길은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에 합수목까지 6㎞ 길이의 탐방로가 완공되면서 신선계곡은 베일에 싸인 속살을 세상에 드러냈다.

신선계곡 트레킹의 출발점은 백암온천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온정면 선구리 주차장. 주차장에서 옛날 아연광산이 있던 신선계곡 초입까지는 걷기에 편한 임도가 이어진다. 임도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못은 매미소.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물놀이 하는 가족들이 색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울긋불긋한 풍경을 연출한다.

임도가 끝나고 나무데크로 이루어진 탐방로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아연광산의 광해(鑛害) 복구를 위해 설치한 길이 220m, 높이 4.5m의 콘크리트 옹벽이 흉물처럼 들어서 있다. 최근 이 옹벽에 울진금강송을 테마로 거대한 벽화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옹벽 앞을 걷는 사람들이 마치 소광리금강송숲을 걷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면서 새로운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좁은 V자 협곡으로 이루어진 신선계곡은 골짜기 대부분이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암산에서 발원한 청류는 이 바위골짜기를 타고 내리면서 온갖 형상의 폭포와 소를 만들었다.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아 신선들이 노는 곳이라는 의미로 선시골로 불렸으나 10여 년 전부터 신선계곡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됐다.

오랜 세월을 거친 물살에 깎이고 다듬어진 신선계곡의 암반과 바위는 작은 돌이 점점이 박힌 기이한 모습이다. 돌 속의 돌은 색깔과 모양도 다양해 어떤 것은 검은색이고 어떤 것은 잿빛을 띠고 있지만 표면은 그라인더로 연마한 듯 매끄럽다. 이 깊은 계곡에 어떻게 콘크리트를 닮은 암반과 바위가 생성됐을까. 학자들은 신생대에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다른 돌들과 섞인 때문이라고 한다.

신선계곡 탐방로는 대부분 나무데크로 이루어져 있다. 협곡이 좁은데다 워낙 험해 길을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깎아지른 절벽에 파일을 박고 나무데크를 깔아 노약자도 쉽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용소와 함박소 등 절경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도록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몇 곳 만들었다. 계곡을 건너는 4개의 출렁다리는 호박소 등 절경을 감상하는 포인트.

쉬리와 버들치가 유영하는 계곡은 강돌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그러나 유리처럼 투명한 계류도 얕은 소를 만나면 초록색으로 변하고, 더 깊은 담을 만나면 검은색을 띠기 시작한다. 지난 가을의 화려했던 추억을 간직한 낙엽이 가라앉아 쌓인 얕은 소는 황금색을 자랑하기도 한다.

신선계곡에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바위가 몇 개 있다. 계곡 중간 허리에 우뚝 솟은 바위는 닭의 벼슬을 닮았다는 닭벼슬바위, 바위 틈새로 도끼나 낫을 갈았다는 숫돌바위, 지세가 험준해 참새도 눈물을 흘리며 지나갔다는 참새눈물나기, 바위가 가팔라 다람쥐도 한달음에 뛰어오르지 못한다는 다람쥐한숨제기 등이 그것이다. 이름과 모양이 닮지 않아 실소를 자아내지만 재미있는 이름 덕분에 어느새 신선계곡의 점입가경에 빨려들게 된다.

신선계곡 최고의 절경은 바위 틈새로 빠져나온 계류가 못을 이루고 있는 용소. 아쉽게도 탐방로 아래 계곡에서는 그 절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시 탐방로에 올라와 첫 번째 출렁다리 중간쯤에 서면 기묘하게 생긴 바위협곡과 그 사이로 흐르는 계류, 그리고 푸른 용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 번째 출렁다리 하류에 위치한 도적바위와 함박소도 황홀하기는 마찬가지.

두 번째 출렁다리 중간쯤에서 보는 호박소는 너무 아름다워 조각품을 연상하게 한다. 호박은 옛날에 방앗간에서 곡식을 찧을 때 쓰던 기구로 호박소와 너무나 닮았다. 가마실골에서 흘러내린 실오라기 같은 폭포가 오랜 세월에 걸쳐 암반에 절구통 같은 큰 구멍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무데크 탐방로가 끝나면 합수곡까지 산길이 계속된다. 안타깝게도 등산로 주변에 뿌리를 내린 아름드리 금강송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금강송의 껍질을 벗기고 촘촘한 간격으로 소나무에 V자로 낸 상처는 화전민들이 송진을 채취한 흔적. 어떤 소나무는 그때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던지 지금도 상처에서 송진이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신선계곡 탐방로는 화전민이 살던 흔적이 역력한 합수곡에서 끝난다. 합수곡 주변에 있던 독실마을은 1968년에 발생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철거됐다. 장작과 나물 등을 지게에 지고 신선계곡을 내려와 선구리 마을에서 쌀, 해산물, 등잔석유와 바꿔갔던 화전민들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화전민들의 한숨이 배어있는 신선계곡은 비경에 놀란 탐방객들의 감탄사로 바뀌고 있다.

울진=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