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대통령 비서실장
입력 2013-08-07 17:33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비서실장은 중요한 자리이긴 하지만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지는 못한다. 정무직 공무원 신분이라 대통령이 언제라도 해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의 최고 정점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마음먹기에 따라, 또는 누가 그 자리에 가느냐에 따라 적지 않은 역할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흔히 왕조시대 도승지(都承旨)와 곧잘 비교된다. 정3품으로 품계는 낮지만 왕의 측근에서 일하기 때문에 왕권이 강력한 시기나 국왕의 신임을 받을 때에는 의정부나 육조를 능가했다. 어린 시절 눈앞에서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목격하고 어렵사리 왕위에 오른 정조가 도승지로 임명한 홍국영이 대표적인 사례다.
세손 시절의 정조를 보호해준 인연으로 도승지가 된 홍국영은 왕의 신임을 등에 업고 조정의 모든 요직을 장악했다. 조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그의 손을 거쳐야 했기에 8도의 감사나 수령들까지도 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병으로 죽긴 했지만 누이동생을 정조에게 시집보내 처남매제 관계를 맺었다. 홍국영의 권세가 하늘을 찔렀기에 세도라는 말이 처음으로 생겼다.
신임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홍원 국무총리보다 나이나 법조경력 등 모든 면에서 선배다. 김 실장이 검찰총장을 할 때 정 총리는 중수부 과장이었다. 두 사람 모두 사심이 없는 깔끔한 성격이라 영역을 침범하거나 갈등을 일으킬 소지는 없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다만 법무장관과 국회의원까지 지낸 데다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 실장에게 너무 힘이 쏠릴 경우 총리의 내각 통할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김 실장 취임으로 그의 고향인 경남 거제는 온통 축제분위기라고 한다. 하금열 전 비서실장에 이어 지역 출신 인사가 다시 요직에 올랐기 때문이다. 거제도는 조선소가 들어서기 이전에는 비좁고 경사진 논밭과 거친 바다 때문에 생활력이 강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도 못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제외한 대부분의 출향 인사는 가난했으며 조선시대 유배 온 선비의 후손들이 많다고 한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5개월여 만에 낙마한 것은 아쉽다. 역대 비서실장 가운데 4번째 단명이다. 전윤철 전 비서실장과 이상주 전 비서실장이 각각 3개월과 5개월을 채우지 못했고, 류우익 전 비서실장도 4개월 만에 낙마했다. 그러나 경제부총리 등으로 영전하거나 주중 대사와 통일부 장관 등 요직을 거쳤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