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관광으로 부활하는 두레
입력 2013-08-07 17:33
“우리 지역은 물도 맑고 공기도 깨끗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이 지역 자산으로 관광객을 불러 모아 일자리도 만들고 소득을 창출할 수는 없을까요?”
지자체와 주민들의 이런 고민은 지난 2007년에 신안 증도를 비롯해 전남 4개 지역이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단번에 해결됐다. 슬로시티에 대한 관광객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면서 슬로시티는 매년 2개씩 늘어났다.
그런데 잘나가던 슬로시티 사업에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 5년마다 재인증을 받아야 하는 국제슬로시티협회 규정에 따라 전남 4개 슬로시티를 재심사한 결과 지난 6월에 장흥슬로시티가 탈락하고 증도슬로시티는 재인증 보류판정을 받았다. 지자체와 주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탈락한 장흥은 당장 슬로시티 상표를 사용할 수 없게 돼 표고버섯 등 특산물 판매에 타격을 받고 있다. 관광객 유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슬로시티본부는 장흥슬로시티가 과도하게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슬로시티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해 ‘느리게 살자’는 슬로시티의 본질을 훼손한 게 탈락 이유라고 밝혔다. 지자체와 주민들은 슬로시티를 활용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게 뭐가 잘못됐느냐고 반문한다. 재심사 과정에서 한국슬로시티본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주장도 나오는 등 갈등 조짐도 보이고 있다.
사실 이번 사태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슬로시티가 ‘느림의 미학’을 추구한다면 한국의 슬로시티는 관광객 유치로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는 데 주력했다. 슬로시티가 행정기관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주민이 소외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관광객 유치를 통해 일자리와 소득 창출을 하는 ‘한국형 슬로시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지역관광 활성화와 지역공동체 육성을 위해 주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관광두레’를 만들기로 했다. 충북 제천 등 5개 시·군을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하고 관광두레를 진두지휘할 프로듀서를 지역주민 중에서 선발하는 등 이달부터 관광두레 지원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2017년까지 관광두레를 100개 시·군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사실 그동안의 관광정책은 관광시설 개발 등 하드웨어에 치중했다. 그러나 이번에 선보이는 관광두레는 주민들의 주체적·자발적·협력적 참여를 바탕으로 문화유적지와 먹거리, 탐방로, 마을축제, 숙박시설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체계적으로 연계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주민기업을 창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실제로 스위스의 대표적 낙후지역인 나프베르그란드에서는 기존의 오솔길을 이용해 20∼30개의 트레킹 코스를 정비했다. 그리고 이 트레킹 코스를 산악마을과 연계함으로써 민박을 유도하는 등 주민들에게 실제적으로 경제적 도움이 되는 ‘오솔길 프로젝트’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일본의 사이타마현 후카야시에서는 실직자로 전락한 여성주민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두부공방을 운영해 100여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한국에도 성공사례는 많다. 강원도 인제 백담마을 주민들은 1996년에 백담사를 오가는 마을버스 운영회사를 만들었다. 셔틀버스는 1대에서 10대로 늘어났고 지역주민 19명을 채용한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수익금을 황태 가공공장에 재투자해 15명을 더 고용하는가 하면 지난 명절에는 주민 214가구에 배당금 명목으로 30만원씩을 지급하는 등 성공신화를 창조했다.
우리 민족은 마을주민들이 협력해서 농사를 짓거나 길쌈을 하던 ‘두레’라는 공동노동조직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퇴색했던 이 두레가 ‘관광두레’로 거듭나 지역관광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