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새 스타일 정무수석, 갈등정국에 역량 보여야
입력 2013-08-07 17:34 수정 2013-08-07 23:22
이번 8·5 청와대 개편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사는 외교관 출신의 정무수석 기용이다. 박준우 신임 정무수석은 외교부 기획관리실장, 주 싱가포르 대사, 주 벨기에·EU 대사 등을 지낸 전직 정통 외교 관료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그가 2개월간 공석이었던 정무수석에 기용된 것을 두고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다.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걱정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박 수석 기용은 박 대통령의 정치적 모험이다. 정치와 외교는 다르다. 외교관으로서 박 수석의 역량은 뛰어났을지 몰라도 이를 그대로 정무수석 능력으로 대입하는 것은 무리다. 역대 대통령이 정치인을 정무수석에 기용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걸핏하면 정국이 경색되고, 여야 간 정쟁이 일상화되다시피 한 우리 정치상황에서 이를 중재할 적임자는 여야와 두루 소통할 수 있는 정치인이 제격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지만 반대일 경우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은 불문가지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가급적 여의도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과 국정원 국정조사를 둘러싼 정쟁이 일파만파 확대되는 와중에도 국회와 여야가 할 일이라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었다. 그러니 청와대 비서실 직제상 수석비서관으론 국정기획수석 다음인 정무수석 자리를 두 달간 비워둬도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당·청 분리는 대통령의 제왕적 통치를 경계하려는 취지이지 아예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정치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지금처럼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립해 정치가 실종되면 민생은 설 자리를 잃는다. 대통령은 여야를 떠나 국정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일을 정무수석이 대통령을 대신해 하도록 하는 것이다. 때문에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진의를 야당에 전하고, 야당의 요구를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보고해 타협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소통의 메신저가 돼야 한다.
박 대통령은 외교관 시절 그가 보여준 협상력과 정무적 판단력을 보고 기용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사 재직 시 탁월한 외교역량을 보여줬으며, 정무수석으로서 새로운 시각과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기존 틀을 벗어나 국회뿐 아니라 외교안보 분야까지 활동 범위를 확대해 정무수석의 새 모델상을 정립해보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읽힌다.
박 수석의 어깨가 무겁다. 당장 광장정치를 계속하고 있는 민주당을 설득해야 하는 등 할 일이 태산인데 정치권 반응은 냉랭하다. 민주당이 그를 메신저 이상의 협상 파트너로 인정할지도 불분명하다. 김기춘 비서실장-이정현 홍보수석이 사실상의 정무라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박 수석이 외풍에 흔들림 없이 오로지 국민 편에 서서 대통령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을 때 새 모델 상도 정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