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 열풍 5년의 명암… 전문가 11인에 설문
입력 2013-08-07 17:43
케이블 채널 Mnet의 김용범 PD는 2008년 12월 회사로부터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욕심이 나긴 했지만 자신은 없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오디션은 시청률은 안 나오고 제작비만 많이 드는 포맷이란 게 방송가의 정설이었다.
김 PD는 프로그램 기획에 착수했던 시절을 거론하다 이같이 말했다. “과거 방영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왜 실패했는지 분석하다 이런 결론들을 내리게 됐어요. 실력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하고 싶은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스타를 배출해내야 한다. 상금이 많아야 한다. 협찬사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만들어진 ‘슈퍼스타K(슈스케)’ 첫 회가 이듬해 7월 24일 방영됐다. 프로그램은 최고 시청률이 8.4%(닐슨코리아 기준)까지 치솟았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케이블 방송가에선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공은 ‘오디션 열풍’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오디션 열풍 5년의 명암=‘슈스케’는 가수의 새로운 등용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많은 가수 지망생들이 ‘슈스케’ 문을 노크했다. 결선 진출자 중 일부는 ‘반짝 스타’ 수준을 뛰어넘어 명실상부한 스타로 발돋움했다. 지상파 방송3사도 ‘K팝스타’(SBS) ‘위대한 탄생’(MBC) ‘톱밴드’(KBS2) 등을 선보이며 열풍을 부추겼다. 모델이나 연기자 오디션 프로그램 등도 만들어졌다.
매년 ‘슈스케’ 새로운 시즌을 선보여온 Mnet은 9일 밤 11시 시즌 5 첫 회를 내보낸다. 이는 곧 가요계와 방송가를 휩쓴 오디션 열풍이 햇수로 5년이 됐다는 걸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일보는 7일 음악평론가와 음악 프로그램 PD 및 작가 등 전문가 11명에게 오디션 열풍 5년이 남긴 명암에 대해 물었다. 응답자 상당수가 우선 언급한 건 오디션이 바꾼 가요계 지형도였다.
“이전엔 가수가 되는 ‘통로’는 기획사에 들어가거나 (인디 뮤지션이 돼) 서울 홍대 앞으로 가는 2개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디션은 가수 데뷔의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냈다.”(서정민갑 음악평론가)
“기존 아이돌 음악 외에 다른 장르의 곡에도 대중이 ‘귀를 여는’ 환경이 조성됐다. ‘춤추는 아이돌’이 가수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주류 음악 변화에도 기여했다.”(이민희 음악평론가)
이 밖에 가수에게 실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기게 만들었다는 점, 흘러간 가요와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되는 장(場)이 마련됐다는 점 등이 언급됐다.
하지만 부정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박준흠 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는 “오디션은 방송사들이 시청률을 위해 만든 콘텐츠일 뿐”이라며 “향후 대중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칠만한 아티스트가 단 한 명도 배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홍범 KBS 라디오 PD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점점 ‘돈 되는 아이돌’ 발굴이 목적인 프로그램으로 변질돼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오디션이 발굴한 최고의 인물은?=오디션 프로그램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잇달았지만 현재 오디션 출신 가수들이 가요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오디션 출신 가수 중 최고의 재목(材木)으로 꼽는 인물은 누굴까.
이들 전문가 11명에게 ‘최고의 재목’ 각 2명씩 추천해줄 것을 요청했을 때, 가장 많은 지지(7명)를 받은 팀은 ‘슈퍼스타K3’ 준우승팀 버스커버스커였다. “누구보다 빠르게 ‘뮤지션’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어쿠스틱 팝 장르를 대중화시키며 가요계 판도를 뒤흔들었다” 같은 평가가 이어졌다.
두 번째로 많이 언급(5명)된 인물은 ‘K팝스타’에서 준우승을 거머쥔 이하이였다.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호평이 줄을 이었다. 이 밖에 존박은 최근 발표한 첫 정규 음반이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하이 다음으로 많은 3명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응답자 중 2명은 지난 4월 종영한 ‘K팝스타2’ 우승팀 악동뮤지션을 언급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설문에 응해주신 분들(가나다순)
강태규(음악평론가) 김광현(월간 ‘재즈피플’ 편집장) 김교석(대중문화평론가) 김용범(Mnet PD) 김홍범(KBS 2FM ‘김C의 뮤직쇼’ PD) 박준흠(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 배순탁(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서정민갑(음악평론가) 이민희(〃) 전용석(광주MBC ‘문화콘서트 난장’ 음악감독)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