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층 소액대출’ 그라민은행, 방글라데시 정부 “경영권 인수”

입력 2013-08-06 18:20

방글라데시 정부가 전 세계 마이크로그레디트(빈민층 대상 무담보 소액대출) 열풍을 일으킨 그라민은행의 경영권 장악에 나섰다. 유력 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라민은행의 설립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73)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분석돼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지난해 5월 구성된 정부 위원회가 현재 25%에 불과한 그라민은행의 정부 지분을 자본 투자를 통해 51%로 늘리는 방안을 마련해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그라민은행은 농촌 지역 여성 840만명이 채무자이자 주주로서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

그라민은행의 타시마 카툰 이사는 “자살이나 다름없는 짓”이라고 반발했다. 그는 “소수 주주에 불과한 정부가 다수인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할 수 있는가”라며 “그라민 모델은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데 앞으로 그 신뢰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라민은행의 정부 인수 계획은 지난 4월 11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라나 플라자 의류 공장의 붕괴사고에서 드러난 부패와 감독 소홀에 대한 비난 여론과 무관치 않다. 특히 그라민은행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도 정부의 공격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그라민은행은 방글라데시 최대 통신사인 그라민폰을 비롯해 48개 기업을 거느린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소액 대출과는 상관없는 기업 투자 확대는 당초 그라민은행의 설립 취지에 벗어나 있다”면서 “그라민은행의 개혁과 감독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아불 말 압둘 무히트 재무장관은 지난달 의회에서 “유누스는 자신이 세운 사회적기업들의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그라민은행의 자금으로 사업을 하지만 주주들은 배당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누스는 그러나 최근 인터뷰에서 “그라민은행의 자금을 한 푼도 가져다 쓰지 않았다”면서 “이들 기업들은 비영리기업이고 가난 탈출이라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반박했다.

그라민은행을 둘러싼 논란은 정부와 유누스 사이의 오랜 갈등과 연관이 있다고 WSJ는 전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2011년 정년을 문제 삼아 그라민은행에서 유누스를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유누스를 ‘흡혈귀’라고 공격했다.

야권에서는 정부가 그라민은행 소유의 기업들에 대한 경영권을 확보한 뒤 금전적 이득뿐만 아니라 수백만명의 은행 고객들을 ‘잠재적 표’로 활용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전직 관리이자 경제학자인 아크바 알리 칸도 “그라민은행은 망가지지 않았는데 왜 고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