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20년] ‘장영자 사건’ 계기 국회 통과… YS정부때 전격 실시

입력 2013-08-06 17:51


금융실명제는 전두환·노태우 정부 시절 두 차례의 좌절 끝에 1993년 8월 전격 실시됐다. 지난 20년 동안 금융실명제는 우리 국민의 금융 인식도를 높이고 부정·부패를 막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범죄형 차명계좌 개설이 근절되지 않는 등 보완할 점도 많다.

◇2전3기 끝 전격 시행=1982년 ‘장영자·이철희 부부 어음사기 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9월 금융실명제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금융실명제를 83년부터 전면 실시한다는 계획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시행시기를 86년 1월 1일 이후 대통령령이 정하는 날로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무기 연기됐다. 노태우 대통령은 89년 4월 금융실명제 실시단을 구성해 1년간 준비작업을 벌였으나 역시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이유로 준비단을 해체했다.

표류하던 금융실명제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물살을 탔다. 김 대통령은 93년 6월 이경식 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금융실명제 방안을 은밀하게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금융시장 혼란과 자금 빼돌리기 등을 우려해 실무진은 재무부 고위관료들마저 전혀 알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보안을 지키며 극비리에 실무작업에 착수했다. 홍재형 당시 재무부 장관으로부터 실무작업 지시를 받은 김용진 세제실장(전 과학기술처 장관)과 김진표 세제심의관(현 민주당 국회의원), 임지순 소득세 과장(전 국세청 국세공무원교육원장), 백운찬 사무관(현 관세청장) 등 4명은 가족과 직장 동료에게 해외 출장 등이라는 이유를 들며 최종안이 마련될 때까지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끊었다.

실무총책이었던 김 세제실장은 청와대 경제수석과도 접촉하지 않고 오로지 대통령과 부총리, 재무부 장관과 직통 라인을 유지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보안은 끝까지 지켜졌고 93년 8월 12일 오후 7시45분,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집니다”라는 김 대통령의 특별담화 발표로 금융실명제는 전격 실시됐다.

◇성과와 한계=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두 달간의 실명전환 의무 기간 동안 가명계좌의 실명전환율은 97.4%에 달했다. 실명으로 전환된 가명과 차명예금액은 모두 6조2379억원이었다. 이후 20년 동안 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세원을 발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부패 고리를 끊는데도 일조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합의에 따른 차명계좌 개설을 금지한 조항이 없어 범죄형 차명계좌 개설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이다. 최근 불거진 전두환 전 대통령 재산은닉 사건이나 CJ그룹 비자금 사건 등에서 보듯 범죄형 차명거래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일상적 차명거래와 분리해 범죄형 차명거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고려대 오정근 교수는 6일 “현재 우리나라는 금융거래 규모가 1000만원 이상일 경우에만 추적조사를 한다”며 “금융거래 부패에 대한 기준을 더 엄격히 해야 크고 작은 부패를 척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너무 엄격히 차명계좌를 금지하면 가족 간의 일상적 거래와 자녀 명의 통장 등이 모두 차명거래로 분류될 수 있어 많은 국민을 범법자로 만들 우려가 있다”며 “차명거래 처벌 범위를 늘리기보다는 가중 처벌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이성규 백상진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