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미국의 전작권 전환 시각

입력 2013-08-06 17:46


나라나 민족마다 선호하는 ‘이상적 인간형’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인이라면 ‘인정 많고 학식 높은 선비’가 이상형이 아닐까 싶다. 미국인이라면 어떤 캐릭터일까. 워싱턴에서 근무하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미국인들의 ‘힘’과 ‘용기’에 대한 선호가 뿌리 깊다는 사실이다. 유년기부터 시작되는 체육 활동에 대한 강조는 유별난 데가 있다. 지도자들을 봐도 미국인의 이상형을 짐작할 수 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지략도 뛰어났지만 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용맹함으로 유명했다. 링컨도 일리노이주 세일럼에서 점원으로 일할 당시 인근 개척지의 목동 우두머리를 레슬링으로 제압할 정도로 육체적으로 강건했다. 존 F 케네디는 젊은 시절 척추 이상 등 만성병에 시달렸지만 이를 초인적인 의지로 이겨낸 불굴의 인간이었다.

육체적 힘과 미에 대한 숭상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이어지는 서양 문명의 한 특질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거칠고 위험한 변경 개척이 역사의 큰 줄기여서인지 더욱 힘과 용기를 갖춘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듯하다.

지난달 한국전 정전협정 60주년을 눈앞에 두고 한·미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 문제가 갑자기 불거졌다. 이와 관련, 미군 지도부의 입장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 일각에서는 미국이 당초에는 부정적이었지만 북한 핵·미사일 긴장 고조 국면을 거치며 입장이 바뀌고 있다는 추측도 나오는 모양이다.

미국의 공식 입장이야 협상을 통해 드러나겠지만 군부 등 정책당국자들의 솔직한 속내는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달갑지 않고 이해할 수 없다’는 쪽에 기울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전작권 전환 시기를 한 차례 연기했고, 양국이 합의한 제도 개선이 마무리되는 국면에 이를 다시 무효로 하자는 데 대해 황당해할 것이라는 점만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앞서 언급한 미국인들의 기준에서 볼 때 한국이 ‘용기와 자신감이 부족한 친구’로 비춰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얘기다. 기자 개인의 추정만은 아니다.

미 국방부에 지인이 많은 미 국방연구원(IDA) 오공단 박사는 “한국전 후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미국에 대한 의존심리를 버리지 못하는 ‘덜 자란 성년’으로 보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오 박사는 이명박정부 초기 전시작전권 환수를 무효화하려고 워싱턴에 온 한국군 퇴역장성 등이 주최한 모임에서 한국을 수영 연습은 열심히 하지만 다이빙대에 서기를 극구 꺼리는 다이빙 선수에 비유한 바 있다. 높은 위치의 다이빙대에 서는 것은 수영과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하지만 처음이 어렵지 다이빙대에 서는 공포를 한번 극복하면 아주 수월하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군은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 됐는데도 이 ‘고비’를 한사코 거부한다는 것이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미국 패널은 물론 이 얘기를 전해들은 많은 미국인 지인들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당신이 해줘서 후련하다’는 말을 오 박사에게 전해왔다고 한다.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 커티스 스카파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의 최근 의회 증언에도 완곡하지만 이런 시각이 표출돼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미국 정부가 한반도 핵 위기 등으로 전작권 전환 결정 때와 상황이 달라졌다는 인식을 공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한국인들이 전작권이 전환되면 북한이 도발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계속 의심하는 데 대해 미 정책당국자들이 답답함을 넘어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