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조성돈] 일본의 잘못된 역사의식

입력 2013-08-06 17:47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인 아소의 망언이 화제다. 그는 일본의 무장을 금지하는 평화헌법의 개정을 이야기하며 나치의 개헌 수법을 배워서 ‘조용히’ 바꾸어보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즉 국민을 속이고, 세계를 속여서 헌법을 바꾸고 과거 군국주의 시대의 강한 일본을 되찾아보자는 속셈이다.

못된 의도도 문제지만 그의 발언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일본 지도자들의 의식이다. 자신들이 과거에 나치정권과 함께 세계에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한 줌 부끄러움이나 죄스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그 과거가 떠올려지는 나치라는 단어를 입에 담고, 더 나아가 그들을 본받자는 발언을 하겠는가.

아소, 부끄럼이라도 알았으면

독일인에게 나치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기 어려운 과거이다.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나치라고 한다면 커다란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단지 독일뿐만 아니라 서구 대부분의 나라에서 받아들여지는 정서일 것이다. 특히 그 대상이 정치인이나 공무원이라면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의 부총리라는 사람이 나치의 수법을 본받자는 말을 했다니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망언이다.

결국 이것은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아마도 2차 세계대전을 자신들이 가장 크게 세상을 뒤흔들었던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시 그 시대를 되찾아 보고자 하는 향수가 느껴진다. 즉 그것을 세계를 향한 범죄라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좋았던 시절로 이해하는 것이다.

독일은 나치시대를 자신들이 세계를 향해 저질렀던 범죄의 시대로 이해할 뿐 아니라 나치가 자신들에게 저지른 범죄의 기간으로 이해한다. 심지어 그들은 종전일(終戰日)을 독일이 나치에서 해방된 날이라고 한다. 독일을 여행해 보면 곳곳에 나치시대에 자신들이 저질렀던 범죄의 현장을 남겨 놓은 것을 보게 된다. 그곳이 곧바로 역사교육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 가족과 함께 독일을 여행했는데 여러 곳에서 이러한 교육의 현장을 만났다. 다하우에서는 유대인뿐 아니라 집시와 정치범들이 갇혔던 수용소를 보았다. 수십만명이 그 수용소를 거쳐서 죽어갔고,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했던 현장이다. 뉘른베르크에서는 나치당이 시작된 대운동장에서 역사교육의 현장을 만났다. 그곳은 박물관이 되어서 수많은 방문객들에게 나치의 범죄를 알리고 있었다.

뉘른베르크 법원에는 과거 전범재판장이 공개되어 있다. 그곳 역시 전시관이 설치되어 그들이 저지른 범죄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후 베를린에 가보니 시내 가장 중심에 있는 교회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 당한 모습 그대로 보전되어 있었다. 전쟁의 참화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반성할 뿐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벌이지 않기 위해서 자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무릎 꿇은 獨 총리 본받아야

그런데 갑자기 일본 부총리가, 그것도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유력인사가 나치를 본받자는 말을 했다는 것은 정신 나간 발언이다. 그것을 실언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발언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역사의식이다.

과거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의 국립묘지에 가서 꽃을 바치고 비가 오는 그 현장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던 일은 유명한 일화이다. 일본의 지도자들이 그렇게까지 할 것이라는 기대는 어려울지 몰라도 최소한 부끄러움이라도 아는 이들이 되었으면 한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