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A교회는 최근 B법무법인으로부터 협조요청서를 받았다. 교회가 한 디자인 회사가 만든 글꼴을 무단으로 사용해 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는 반협박성 문건이었다. 법무법인은 증거로 문제의 글꼴이 들어간 이 교회의 성탄절 영상을 제시했다.
A교회 목사는 “법무법인은 ‘200만원짜리 동영상용 정품 글꼴을 사지 않으면 소송에 걸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면서 “영상 자막에 한글 워드프로그램 글꼴을 사용했는데 그게 저작권 침해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성탄절 영상에 글꼴을 한번 사용했다고 해서 200만원을 내라는 건 너무 가혹한 요구”라고 항변했다.
한국교회의 저작권 침해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다수의 교회는 이미 법무법인에게서 소프트웨어와 사진, 영상, 음원, 악보, 글꼴 등에서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증명을 받고 있다. 이들 법무법인은 저작권과 특허를 보유한 업체에게서 위임장을 받아 소송을 대행한다. 자료 확보가 쉬운 글꼴 문제를 제기하고 합의금을 받아내 수수료를 챙긴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A교회의 경우 법무법인의 편지를 받았다고 곧바로 200만원짜리 글꼴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건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의 실수에 고의성이 없는데다 저작권 침해 범위와 기간,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도 입증하기 때문이다. 설령 벌금이 나오더라도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도 있다.
윤승준 한국교회저작권협회 기획실장은 “교회가 합의를 해주면, 글꼴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5∼6개 법무법인이 또다시 달려들어 문제를 제기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 대안은 저작권 가이드라인을 숙지하고 무료 글꼴 등을 활용해 분쟁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조제호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처장은 “2∼3년 전만 해도 소프트웨어 때문에 법무법인에서 교회로 내용증명을 보냈는데 요즘은 글꼴을 문제 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다수의 교회에 무작위로 내용증명을 보내고 응답할 때 사용료를 받고 있는 만큼 무시하는 게 낫다. 다만 교회는 앞으로 불법 글꼴를 쓰지 않기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사무처장은 “포털 사이트 서체나 서울서체 등 무료서체를 적극 활용하고 총회가 서체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회원교회가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성탄절 영상물 등 “저작권 침해 고의성 없다면 섣부른 합의금 지급은 금물”
입력 2013-08-06 17:37 수정 2013-08-06 1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