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한낱 미물도 염치를 알거늘

입력 2013-08-06 17:29


“공무원과 기업인의 부패가 너무 심해 김영란법이 시행돼도 사라지지 않을 것”

우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하고, 시도 때도 없이 하루 종일 울어대는 매미는 우리를 짜증나게 한다.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것에도 모자라 해가 뜨기도 전부터 죽어라고 울어대다가 밤이 돼도 도시 가로등 불빛에 기대 매미는 절규를 멈추지 않는다. 이놈의 여름이 빨리 끝나야 저 원수 같은 매미 울음소리가 잦아지려나.

매미 소리를 벗 삼아 한여름을 보내도 좋으련만 고요와 적막을 유난히 사랑하는 현대인들은 이제 매미를 선한 마음으로 볼 여유를 잊었나 보다. 하지만 느티나무 줄기에 자리 잡고 앉아 온몸을 부르르 떨며 울부짖는 저 미물도 남몰래 간직한 미덕이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생존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옛 선비들은 이 미물이 관(冠)의 끈이 늘어진 머리를 갖고 있어 문(文)이 있고, 이슬만 먹고 살아 청(淸)이 있고, 곡식을 먹지 않으니 염(廉)이 있고, 집을 짓지 않으니 검(儉)이 있고, 철 맞춰 허물을 벗고 절도를 지키니 신(信)이 있다고 간파했다. 군자가 갖춰야 할 오덕(五德)을 가진 귀한 미물로 여겼다. 진(晉)나라 시인 육운(陸雲)은 한선부(寒蟬賦)를 지어 극찬했다.

그래서인지 중국에는 매미를 칭송하는 시가 부지기수며 이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매미는 시인 묵객과 선비들의 친한 벗이다. 그러니 선비를 자처하려면 절대 매미 울음소리를 탓해선 안 된다. 진작 우리들이 분노를 느끼고 짜증을 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30만 달러쯤이야 취임 축하 선물에 불과하니 두말없이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세리와 영어의 몸에서 빠져나오고자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대기업 회장은 우리를 절망에 빠지게 한다. 회사 돈을 제 돈인 양 여겨 해외로 빼돌리는 것을 예사로 하고,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원전비리는 아무리 파헤쳐도 끝이 안 보인다. 정권 실세에게 준다고 돈을 받아가는 브로커나 돈을 준 사장이나 오십보소백보다.

수나라와 당나라에서 비서감의 벼슬까지 지낸 우세남(虞世南)은 매미를 이렇게 치켜세웠다고 한다. ‘입으로 맑은 이슬 마시고 오동나무 가지 사이에서 시원스레 운다. 높이 있기에 소리가 멀리 퍼지는 것이지 바람의 힘 빌어 그리 된 것은 아니라네.’ 한시의 권위자인 이병한 전 서울대 교수가 엮은 ‘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민음사)에 소개된 글이다. 높은 벼슬을 한 것은 자신의 품격이 고결해서지 세도가의 도움으로 그리된 것은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선비라면 이 정도의 자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이미 오덕이 사라진 지 오래이며 당분간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날만 새면 공무원과 기업체의 야합으로 빚어진 부패의 추한 모습이 맨얼굴을 드러내니 부패방지법이라는 김영란법이 시행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얼마나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남의 돈 받기를 생활화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처벌하는 법까지 만들었을까. 원안대로 법을 통과시키라고 외치기 전에 공직자들은 이런 현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종류의 법이 양산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정마저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수치스럽기 짝이 없다.

여름 한철 땅위에서의 짧은 삶을 위해 7년이 넘는 시간을 홀로 보내며 견디어 냈던 저 매미들도 시나브로 하나둘씩 돌아갈 것이다. 가지 사이에 알을 낳고 나무 밑바닥으로 몸을 던져 짧고도 짧았던 지상에서의 생을 마칠 것이다. 그러나 그 미덕은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다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 확신한다.

시간이 지나면 철없던 아이들도 소견머리가 점점 트여가는 것이 인간의 길이기도 하다. 올 여름에 벌어진 우리 사회의 비리와 부조리가 내년 이맘때는 제발 사라졌으면 좋겠다. 한낱 미물도 오덕을 갖췄다고 칭찬받는 마당에 우리들이라고 성인으로 부활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나.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