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 온 재외 한글학교 교사들… 이민세대 자녀 등에 한글교육 “한국인 정체성 찾아주지요”
입력 2013-08-05 18:37
얼마 전 미국 오하이오주 톨리도 한글학교에 한 40대 여성이 들어섰다. 검은 눈동자에 검은 머리카락. 외모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지만 한국말은 한마디도 못했다. 그는 수업 중이던 강용진(60·여)씨에게 자신을 30여년 전 미국으로 건너온 입양아라고 소개했다. 품에서 입양 당시 가져온 서류와 사진을 꺼낸 여성은 자신의 한국 이름과 주소를 읽어달라고 했다. 강씨는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 찾아오는 동포에게 한글학교가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114개국에 퍼져 있는 한글학교는 총 2000여개. 교사는 1만5000명에 달한다. 대부분 무보수 봉사직이다. 몸은 타국에 있지만 마음은 한국을 잊지 않는 교사들이 이민 온 동포와 2세 자녀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뉴질랜드 와이카도 한글학교의 고정미(53·여)씨는 “이민 세대의 자녀들은 자라면서 한국인도, 뉴질랜드인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며 “한글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그들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 말했다.
정부와 시민사회도 이러한 한글학교의 가치를 인정해 지원을 강화하는 추세다. 올해 재외동포재단과 교육과학기술부 등의 한글학교 운영비 지원액은 95억50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28억원 늘었다. 지난 5월 처음으로 ‘세계한국학교후원회’가 창설되기도 했다.
그러나 해외의 한글학교 교사들은 상당수가 부족한 지원과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글학교 교사들은 “학교 건물이 없는 것이 가장 서럽다”고 입을 모았다. 강씨는 “주말에 현지 학교 건물을 빌려 수업하는데 학생 한 명이 컴퓨터를 잘못 만져 문서를 지웠더니 다음날 바로 쫓겨났다”고 했다. 학교까지 통학하기 위한 수고도 만만치 않다. 고씨는 너무 멀어서 학교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직접 태우러 8인승 승합차로 돌아다닌다. 부족한 교과서도 문제다. 요르단 한글학교의 이철수(57)씨는 “정부에서 보내주는 국정 교과서가 5년째 모자라다”며 “학생들에게 선착순으로 나눠주거나 복사해서 쓰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여러 어려움도 있지만 보람도 크다고 했다. 강씨는 “수업이 끝나도 더 공부하고 가겠다는 아이들을 볼 때 뿌듯하다”고 했다. 칠레 한글학교의 남도우(48)씨는 “선생님을 본체만체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저 멀리서 뛰어와 인사하고 간다”며 “한글뿐 아니라 어른을 공경하는 한국 문화를 체득해가는 학생들이 기특하다”고 칭찬했다.
외국인이 한글을 배우겠다고 찾아오기도 한다. 프랑스 숄레 한글학교의 신현숙(58·여)씨는 “파란 눈의 프랑스 아이가 학교에서 기역, 니은을 쓰고 읽을 때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강씨를 포함한 교사 197명은 재외동포재단에서 준비한 ‘재외한글학교교사 초청연수’ 참석 차 한국을 찾았다. 교사들은 한국어 교수법을 토론하고 석굴암 등의 문화 유적을 둘러본 뒤 7일 출국할 예정이다. 강씨는 “외국에 살지만 우리의 뿌리는 한국”이라며 “동포와 지역사회의 외국인이 한글과 한국 문화를 접할 때까지 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