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생 눈에 비친 한국 ‘백인우월주의’… 단일민족 자랑하면서 화장품 광고모델은 왜 백인 일색?

입력 2013-08-06 05:03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대를 다니는 김하나(21·여)씨는 이번 한국 방문이 세 번째지만 또 다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홍대 거리에 줄줄이 들어선 미용실마다 걸려 있는 사진속 모델은 모두 백인들이었다. 인근 백화점 화장품 코너도 똑같았다. 분명 국산브랜드인데 화장품 광고 사진 속에서 미소짓는 사람은 흰 피부에 금발 머리 백인들이었다. 왜 그럴까. 미국에선 톱모델로 주목받는 동양인 모델도 적지 않은데…. 그는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백인 우월주의’가 여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2일 이화여대에서 만난 김하나씨는 영어로 이런 이야기를 한참 동안 이어갔다. 김씨는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재미교포 2세다. 여름방학을 맞아 ‘이화-하버드 서머스쿨’에 참가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화여대생 14명과 하버드대생 9명은 6월 24일부터 함께 한국 문화를 탐구하며 다큐멘터리 영화 6편을 제작했다. 김씨가 만든 다큐멘터리 제목은 ‘하얀 얼굴들(White Faces)’이다.



김씨는 “한국 친구들은 일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듯한데 광고 속 백인 모델들이 내겐 무척 생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단일민족인 나라에서 왜 상품을 팔기 위해 낯선 얼굴의 이방인을 모델로 써야 하는지 의아해서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했다.



김씨는 이화여대생 박선영(21) 김성아(20)씨, 베이징대에서 특별히 참가한 중국인 장호(21)씨와 한 팀을 이뤄 서울 이태원, 신촌, 홍대 등을 돌아다니며 서울시민과 외국인들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백인’에 대해 갖고 있는 한국인의 인식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박선영씨는 “막연히 서양 사회를 이상적인 곳으로 여기는 인식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며 “하지만 인터뷰한 서양인 중에는 오히려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하나씨는 다만 한국인의 사고방식이 ‘서구 동경’에서 점차 자유로워지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에 대한 국제적 평가가 높아지고 사회도 다문화주의를 포용해가면서 사람들 인식은 빠르게 변하는데, 시장의 상품과 광고에 구시대적 이미지가 남용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국내의 한 화장품회사에 직접 찾아갔다. 이 회사는 외국인 모델을 기용해 각종 광고물을 제작하고 있다. 이유를 묻자 회사 관계자는 “고급화 마케팅 전략”이라며 “실제 그 모델을 기용한 뒤 판매량이 늘었다”고 했다.



김하나씨는 그러나 “판매량 증가가 단순히 외국인 모델, 즉 ‘백인의 얼굴’ 때문인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현상을 ‘백인 효과’로만 바라보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장호씨는 “중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에선 부동산처럼 고가품 광고에는 꼭 백인이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