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보호무역주의
입력 2013-08-05 17:42
“내가 하는 대로 하지 말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2000년대 초 미국의 무역정책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미국이 막대한 농업보조금을 주더라도 개발도상도국은 그럴 수 없고, 미국이 개도국의 특허를 침해하더라도 개도국은 미국 기업의 특허를 도용하면 안 된다. 미 행정부가 ‘애플의 구형 스마트폰 제품의 수입을 금지한다’는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에 지난 3일 거부권을 행사한 것도 자유무역에 대한 미국의 굽은 잣대를 확인해주는 많은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현대의 자유무역이론은 나라마다 가진 생산요소들 간의 비율이 다른 데서 비교우위가 생긴다는 가정을 기초로 성립됐다. 어떤 나라든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생산요소가 보다 집중적으로 요구되는 생산물에 대해 비교우위를 가진다. 예를 들어 미국이 항공기와 TV세트를 태국보다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미국은 상대적으로 더 풍부한 자본을 자본집약적인 항공기 산업에 집중하고,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더 풍부한 태국은 노동집약적인 TV세트 생산에 전념해야 한다. 그럴 때 자유무역을 통해 양국 모두 생산과 소비가 극대화된다.
그렇지만 공정한 자유무역의 전제조건인 호혜평등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이 비교우위를 가지는 산업에서도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높은 무역장벽을 설치하거나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자유무역제도 안에서 한동안 비교적 충실하게 맏형 노릇을 했으나 1980년대부터 규제완화와 세계화 드라이브를 펼치면서 개도국들의 시장 전면개방과 관세 인하 등을 요구했다.
이론적으로 자유무역은 무역당사국 모두에 이득이 되지만, 현실에서 늘 그렇지는 않다. 자유무역의 혜택은 강대국에는 크게, 개도국이나 빈국에는 적게, 그것도 종종 혜택보다 더 큰 대가를 조건으로 주어질 뿐이다.
현재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국내 보조금은 대부분 금지돼 있지만 농업, 기초연구개발, 지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보조금은 허용된다. 모두 선진국들이 많이 지급하고 있거나 그들만이 지급할 여유가 있는 항목들이다. 또한 선진국 수출품에 부과되는 평균 관세율이 개도국 수출품에 대한 관세율보다 훨씬 더 낮다. 자유무역이 법이라면 보호무역조치는 주먹이다. 다시 험악해진 세계 경제전쟁터에서 우리나라도 법 못지않게 주먹을 동원해야 할 때도 있을 것 같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