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손봉호] 수신료 인상과 방송의 공정성

입력 2013-08-05 18:16


언론의 자유와 공정성은 투표의 자유와 공정성과 함께 민주주의의 보루이며 부패 방지의 조건이다. 그동안 우리는 언론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언론의 공정성은 아직도 만족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언론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언론자유는 별 가치가 없고 오히려 더 해로울 수 있다. 이제는 우리가 언론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뜻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오늘날 언론의 공정성을 해치는 가장 큰 힘은 정치권력이나 연고가 아니라 돈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돈보다 더 심각하게 공정을 방해하는 세력은 없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이 세상에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잘못을 옳은 것으로, 천한 것을 고상하게, 늙은이를 젊은이로, 비겁한 자를 용사로” 만드는 것이 있다 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라 했다. 그런 상황은 그의 시대나 그의 말을 인용한 마르크스의 시대보다 오늘날, 특히 한국 사회에서, 더 분명하게 벌어지고 있다.

돈이 개입하면 언론은 검은 것을 흰 것으로, 비겁한 것을 용감한 것으로 왜곡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돈 없이는 언론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정보를 수집할 수도, 공급할 수도 없고 질 높은 정보를 제작할 수도, 교육할 수도 없다.

자유세계의 언론은 대부분 광고료로 운영된다. 그런데 그 광고료에 꼬리표가 붙어있는 것이 문제다. 광고주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주의 비리를 폭로하기가 어렵고 광고주를 공정하게 평가하기도 쉽지 않다. 광고료를 올리려면 독자 수나 시청률을 올려야 하고 그들의 낮은 수준에 적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수용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맛에 맞추게 되고 그들의 궁극적인 이익보다는 그들의 피상적인 재미에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 사회와 청소년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이 돈의 세력에 휘말려 중립성과 질이 훼손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KBS는 그동안 우리나라 언론 가운데 가장 높은 신뢰도를 누리고 있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광고 의존도가 40% 미만으로 다른 언론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가 광고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독일은 2%, 프랑스는 14%만 광고에 의존하는 것에 비하면 KBS의 광고 의존율은 아직도 너무 높다. 공정성과 질적 수준은 그만큼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사회에 언론 기관이 하나만이라도 광고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하나라도 공정한 기사와 올바른 의견을 제시하면 다른 언론들도 그것을 빙자해 광고주의 압력에서 벗어나서 과감해질 수 있다. 그것이 꼭 KBS가 아니라도 좋다. 그러나 광고로부터 자유로우려면 국민의 세금이나 시청료에 의존하는 공영방송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세계적으로 50여개국이 공영방송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같은 선진국은 우리보다 적게는 8.1배(프랑스), 많게는 10.1배(독일)의 수신료를 받고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신료 2500원은 1981년에 책정돼 30여년간 동결돼 있다. 그동안 물가와 제작비는 몇 배나 올랐고 디지털화로 채널도 늘었으며 첨단 기자재와 시설도 갖춰야 한다. 그 모든 비용을 경영합리화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광고비를 더 받아 충당하면 시청자와 사회가 큰 손해를 본다. 시청자들의 건강한 성숙과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인상은 필수적이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