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명호] 박근혜의 인사
입력 2013-08-05 18:00 수정 2013-08-05 22:36
우선 반갑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 실패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5일 전격 단행된 청와대 비서실 개편은 의외였다. 지난주에 민정수석 등 일부가 바뀔 것 같다는 얘기는 돌았지만, 비서실장까지 포함되는 대대적인 개편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선하기까지 하다. 인사 내용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취임 이후 박 대통령 인사 스타일에 비춰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소통이 안 되고, 생각 바꾸기를 거부하고, 고집이 센 이미지가 있었다. 물론 ‘원칙 제일주의’ ‘비(非)정상의 정상화’ 같은 일관된 기조가 국민들 머릿속에 긍정적으로 각인돼 있는 점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나 측근들은 부인하겠지만) 소통 부재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강하게 박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서실장까지 포함한 청와대 개편은 지난 5개월여의 국정운영이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점을 대통령 자신이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최고의 참모장과 참모들에게 물은 것이다. 일부는 능력이 못 미치고, 어떤 참모는 갈등 해결 능력이 안 되며, 또 어떤 이는 부처를 ‘상황 관리’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공기업이나 부처 산하 단체장 등 사실상 청와대가 관여하는 노른자위 인선에서 여러 잡음이 있었던 것은 이미 뉴스가 아니다. 이미 알만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청와대 기능에 심각한 문제점을 지적하곤 했다.
朴, 인사 실패를 인정한 것
박 대통령은 취임 초 정치적으로 허니문 기간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임기 첫해이자 선거가 없는 올해는 박 대통령이 여러 개혁안이나 자신의 국정 어젠다를 강력히 추진해야 할 시기다. 그런데 5개월여 동안 별로 진전된 게 없다. 앞으로 잘될 것이라고 느껴지는 분야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야당과의 관계도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뭔가 잘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이미 감지됐다. 사람을 정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게다.
이번 청와대 인사 개편 면면을 보면 박 대통령이 사람을 바꿨지만 국정운영 기조 자체를 바꿀 생각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새 비서실 체제를 통해 기존 운영 기조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배어 있다. 비서실장 역할은 더욱 커지고, 원칙대로 끌고 가려는 의지는 강해 보인다.
인사 내용에 대한 시각은 정국을 보는 눈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야권은 벌써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런 얘기는 어차피 정치적 공방으로나 끝날 것이다.
‘받아적기만 하는 청와대’ 탈피
따라서 김기춘 비서실이 할 일은 분명해 보인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없애야 한다. 불통 이미지는 ‘받아 적기만 하는 비서실’로부터 탈피하는 것이다. 백악관을 다룬 미국드라마 ‘웨스트윙’에서는 대통령이 자신의 의견에 강력히 반대하는 참모들에게 화를 내지만, 결국은 수용하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경직된 조직은 전략 부재로 이어지고, 그러면 쉽게 무너지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홍보 수준이 향상돼야 한다. 지금은 받아 적은 것 그대로 읽고, 언론의 보도 내용이 틀리거나 견해를 달리할 때 수정을 요구하는 기능 정도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이나 생각은 홍보 기능을 통해 국민에 각인된다. 홍보는 액면 그대로 전달하는 기능이 아니다. 정책의 방향과 효율성에 대해 국민들이 최대치를 느끼게끔 최적화 방안을 찾는 것이다.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강조하지만, 가장 창조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할 기능이 바로 홍보다.
박 대통령도 이제는 수첩 내용의 옥석을 가릴 때가 됐다. 인사 실패는 한 번으로 족하다.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김명호 편집국 부국장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