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중증 약값 보장 지지부진… 위험분담제라도 서둘러야
입력 2013-08-05 16:45
대장암 4기 진단을 받고 지난 3년간 투병 생활을 하느라 중산층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한 임모(50)씨. 작년 대선에서 복지공약 하나만 보고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임씨는 “암 치료를 모두 국가가 보장한다고 해서 제 생명줄인 얼비툭스도 보험을 해줄 거라고 믿은 거죠”라고 말한다.
보험이 안 되는 약이어서 그동안 비싼 약값을 대느라 빚까지 졌지만 임씨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지 못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치료제를 국가가 보장해 주기로 했다는 말이 없어 언제까지 경제적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약값 혜택 언제부터 받나? 애타는 환자들= 새 정부가 대선 때부터 수개월에 걸쳐 마련한 4대 중증질환 보장 정책에 대해 환자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보장하기로 약속한 치료제 보험급여 방안이 아직까지 구체적인 추진 계획도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병원 현장에서도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의섭 원자력병원 외과 과장은 “진료할 때마다 환자들이 정부 발표를 봤다며 신약이 언제부터 보험이 되는지 문의하는데 해 줄 말이 없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임씨처럼 암이나 기타 희귀질환에 걸렸을 경우 치료 효과가 좋은 최신 의약품 가격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들은 언제부터 그 약이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급여 시기가 한 달만 당겨져도 이전의 비용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기간은 몇 배로 늘어나고, 무엇보다 그동안 포기했던 치료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신약 도입 앞당기는 조건부 약가 산정제도, 위험분담제= 지난 6월 26일 보건복지부는 4대 중증질환 치료를 모두 건강보험으로 해결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고가의 항암제 및 희귀질환 치료제를 신속히 등재하기 위한 제도 개선책으로 위험분담제를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명시했다. 위험분담제는 약값의 일부를 제약사가 부담하거나 등재 후 사용량과 효과를 평가해 가격을 인하하는 등의 일정 조건을 전제로 보험급여를 적용하는 제도이다. 이는 보험 재정 부담을 덜면서 환자에게는 하루빨리 치료제를 쓸 수 있게 해주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실제 시행을 위해서는 관련 법령 개정은 물론, 시범사업 유형 및 대상 약제 기준 등 세부사항 마련이 필요하다. 이 같은 행정적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을 고려하면 당장 2014년부터 위험분담제를 시행하고 의약품 보험급여를 확대하려면 지금부터 구체적인 방안 제시를 위한 정부의 손발이 빨라져야 한다.
◇제약사는 신약 공급 준비하고, 환자는 유일한 희망을 걸고= 현재 보장성 강화가 요구되는 대표적인 항암제 15∼16개 정도가 정부 정책 준비 과정 및 일부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또 일부 제약사는 이미 위험분담제 적용 여부 및 적용 방안에 대한 입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관련 기관에서 검토 및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약업계에선 소아백혈병 치료제 ‘에볼트라’와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가 위험분담제 적용 대상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대장암 표적치료제 ‘얼비툭스’도 위험분담제 적용 의사가 포함된 심사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사 입장에선 위험분담제도는 마진을 줄여서라도 환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시장에 빠르게 신약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급여 등재를 위한 제약사의 준비는 다 됐다. 이제 2014년에 의약품 건강보험 적용을 위해 올해 안에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정부 의지만 남았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의약품은 환자들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4대 중증질환 치료제 중 현재 급여심사와 약가협상이 진행 중인 약제와 논의 내용을 환자들에게도 신속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환자들은 “정부가 환자들을 상대로 희망고문을 하고 있다”, “어차피 해줄 거면 빨리 해서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게 해 달라”, “보장 혜택을 받는 시기라도 알아야 경제적 형편을 고려해 향후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다발성골수종 환우회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가 원래 목적한 바는 환자들의 경제적 고충 해결이었다”며 “환자들이 하루빨리 약을 쓸 수 있도록 정부와 제약사 모두 적극적으로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특히 급여등재에 신청된 약제들부터 신속히 환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세부 추진계획을 발표해 논의 테이블에 앉을 것을 주문했다.
이영수 쿠키뉴스 기자 juny@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