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보호주의] ‘국익’으로 팔 굽은 오바마…삼성, 추후 분쟁 더 큰 부담

입력 2013-08-04 18:06 수정 2013-08-04 22:47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애플 제품 수입금지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삼성전자의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거부권 행사로 수입이 계속되는 제품은 아이폰4 등 애플의 구형 제품이어서 실질적인 판매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는 갤럭시S4보다 이전 모델이어서 직접적인 경쟁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ITC는 미국 관세법 337조에 의거해 미국에 수입되는 물품이 특허를 침해했는지 여부를 판단해 수입금지를 결정한다. 애플의 아이폰은 중국에서 전량 제조되기 때문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품목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번 결정의 파급효과는 매출액 이상으로 크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미 정부가 자국 기업인 애플을 보호하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앞으로도 미국 시장에서 애플과 경쟁해야 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향후 발생할 수도 있는 특허 관련 분쟁 등에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준사법기관인 ITC로부터 특허 침해를 인정받았지만 결국 미 행정부가 나서 수입금지를 거부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 관계자는 4일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특허 침해 판단을 하고도 해당 제품이 시장에 버젓이 돌아다니도록 허용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ITC는 9일 애플이 제기한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 사건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린다. 이날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결정이 나오면 갤럭시S2 등 삼성전자의 구형 제품군은 미국으로 수입이 금지된다.

이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애플이 침해한 삼성전자 특허는 통신과 관련된 표준특허인 반면, 애플이 문제를 삼은 특허에는 디자인 특허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ITC가 수입금지 결정을 하면 삼성전자의 구형 제품은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판매 감소보다 ‘카피캣(모방꾼)’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미지 타격이 우려된다.

ITC가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리면 양사의 소송전은 새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 오랜 소송전에서 서로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만큼 극적 화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6월 ITC의 애플 제품 수입금지 결정 이후 미 정치권과 재계는 일방적인 ‘애플 구하기’에 나섰다. 미국 상·하원 의원들은 소비자 피해를 이유로 수입금지에 반대 의견을 내놨고, 미 이동통신사 버라이즌과 AT&T도 공개적으로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다. 애플은 자신이 미국 기업이며 고용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점을 내세워 우호적인 여론 조성에 나섰다.

미국 내에서도 이번 거부권 행사는 이례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IT전문매체인 씨넷은 “예상외의 조치(an unexpected move)”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백악관의 개입은 매우 드문 일”이라면서도 거부권 행사를 “애플의 승리”라고 지적했다. NYT는 “오바마 행정부는 유럽이나 환태평양지역 국가들과 공격적으로 무역 협상을 하고 있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기업의 이익을 지키는 데는 더욱 공격적”이라고 전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