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록볼록 스틸, 세상을 담다… ‘메탈 조각가’ 도흥록 제주서 대규모 기획전
입력 2013-08-04 17:39
금속 조각의 미학. 시공간의 시적인 변주. 조형의 ABC. 조각가 도흥록(58)에게 붙는 수식어들이다.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재료로 하는 조각가 중 최고로 꼽힌다. 서울대 미대를 나와 30여년간 금속을 다루고 있으니 “장인정신을 지닌 현대 조각가”라는 찬사를 들을 만도 하다. 국내외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조각을 선보인 그가 대규모 기획전을 연다.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현대미술관에서 9월 3일까지 갖는 ‘LIGHT-Memento of Burning Island’는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사과’ 작품을 비롯해 워낙 정교해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은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등 악기 작품을 내놓았다.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에 비디오를 설치해 움직임을 강조한 최근작도 선보인다.
경기도 용인 작업실에서 금속 재료들과 씨름하는 작가는 ‘메탈(metal) 조각가’로 잘 알려져 있다. 금속성을 가진 매체에 끈질기고도 깊이 파고드는 그는 “가장 섬세한 악기 형태를 금속으로, 그것도 스테인리스로 만드는 일은 결코 녹록치가 않다. 강판을 가열하고 두들기며 모양을 잡고 용접까지 해야 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3D업종이나 다름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작품은 수십 번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다. 까다로운 재료인 스테인리스 스틸을 볼록렌즈나 오목렌즈처럼 다듬는다. 이어 그 위에 물방울이나 퍼즐조각 같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용접한다. 작품에 열을 가하거나 잘라내고, 용접하고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끝없이 반복한다. 이런 작업 끝에 탄생한 작품은 거울 속 또 다른 거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서 전후좌우로 몸을 움직이며 갖가지 자세를 취한다. 주변 풍경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반영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다가섰다가 물러서기를 반복하는 관람객들도 있다. 작품은 주변 풍경이나 관람객까지 품어버린다.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를 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시시각각 변형시킨다.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시각적 유희를 선사하는 것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후면에 펀칭을 해 전면에 거울효과가 나타는 작품들과 퍼즐로 된 이미지를 새긴 작품도 눈길을 끈다. 빛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지나치다가도 문득 ‘어! 이게 뭐지?’ 하고 돌아보게 하는 작품을 하고 싶다”며 “이를 통해 일상적인 삶의 풍경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고 작업 취지를 밝혔다.
작가는 조각 작품에 외부의 빛을 끌어들였다. 차가운 쇳덩어리에 불과했던 스테인리스는 빛으로 인해 주변 풍경을 따스하게 담아내는 거울이 된다. 요즘엔 조각의 개념을 확장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공공미술 작품으로도 유명한 그는 “금속의 물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도자기 작업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바람과 바다의 제주 풍경과 잘 어울리는 전시다(064-710-780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