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잔지바르의 작은 기적
입력 2013-08-04 17:53
지난달 중순에 둘러본 동부 아프리카 3국(탄자니아, 케냐, 마다가스카르)의 가난은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에이즈를 앓고 있다. 부패한 정부는 이런 국민의 고통에 무관심하다. 공무원들은 국제사회의 지원금을 빼돌리는 데 능하고, 국민들은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기보다는 구걸에 익숙하다.
아프리카의 후예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 2006년 8월 상원의원 신분으로 아버지의 나라 케냐를 방문한 그는 “1960년대 케냐와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했지만 40년 동안 40배의 격차가 벌어졌다”며 쓴소리를 했다. 지난달 초에 아프리카를 찾은 그는 케냐 아닌 인접국 탄자니아를 방문해 다시 경고성 메시지를 던졌다.
국제사회의 많은 지도자가 “식량을 직접 주기보다 스스로 곡식을 키우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지원하자”고 말하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우리 정부가 농사를 지으라고 준 경운기가 다음 날 시장에 매물로 나온다. 새마을운동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공을 하기가 무척 어려운 이유다. 공공 시스템이 낡은 틀 속에 갇혀 있고, 국민들 스스로 골목길을 넓히려는 자조의 마음이 없으니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自助精神 일깨운 빈자의 행렬
그래서 아프리카에 파견된 선교사들에게 기댄다. 인도주의에 바탕을 두되 그냥 퍼주지 않는다. 기아대책의 지원을 받아 CDP(Children Development Program)를 운영하는 학교들은 공통적으로 세 가지 원칙을 따진다.
먼저 참여와 자활과 나눔이다. 쌀을 학교에서 대면 취사는 주민이 맡는다. 도움을 기반으로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10리 길을 걸어오는 아이의 맨발을 본다. 가난 속에서도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기 것을 내놓을 줄 아는 마음을 가꾼다.
탄자니아에 있는 잔지바르 숲속학교에서 나눔의 원형을 목격했다. ‘Stop Hunger’라는 행사에서 학생들의 공연을 끝으로 점심식사로 마무리할 줄 알았는데, 200여명의 아이들이 줄을 짓더니 각자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계란이나 가지, 옥수수, 감자, 고구마 같은 농산물이 가장 많았다. 한 아이는 무거운 땔감 나무 뭉치를 들고 있었다. 그렇게 자기 것을 내놓았다.
아이들 뒤로 학부모들도 행렬을 이루었다. 남루한 행색의 300여 주민들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가루비누, 옷감, 사탕수수 등을 풀었다. 닭을 한 마리 묶어 오거나, 생선 몇 토막을 구워온 사람도 있었다. 시각장애인은 아들 옷깃을 잡고 나와 작은 쌀자루를 놓았다.
오병이어의 재현인가. 모아진 물품은 양로원으로 보내졌고, 숲 속 사람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 즐겁게 시래기덮밥을 먹고 돌아갔다.
아프리카의 변화 모델로 삼길
내가 반쯤 넋이 나간 채 눈물을 훔치고 있으니 선교사가 말했다. “우리는 가난의 뿌리를 찾도록 합니다. 아이들에게 ‘How to stop hunger?’라고 물으면 ‘Help each other!’라고 답하지요. 어려서부터 얻어먹는 사람은 벌리는 손이 부끄러운 줄도 몰라요. 하찮은 것이라도 남들과 나눌 때 소중함을 알고 도움의 손길 또한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아프리카의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업혁명이 우선이지만 정신혁명이 동반돼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그들에게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라는 자조의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의 선교사들이 그런 미션을 조용히, 세련되게, 치열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희망의 씨앗 또한 은총의 햇살 아래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