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필교] 고향의 작은 미술관
입력 2013-08-04 17:53
이번 여름휴가 때 고향에 다녀왔다. 경북 예천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돌아본 뒤, 30년 만에 어릴 적에 살았던 마을 신풍을 찾았다. 몇 년 전 폐교가 된 초등학교 교정에 서니 한창 때 800여명의 학생이 공부하며 뛰놀았던 추억이 떠올랐다. 마을에 들어서자 마당에 풀이 수북이 자란 빈집들이 눈에 띄었다. 어릴 적 다니던 길이 없어지거나 지형이 바뀐 곳이 많아 세월이 흘렀음을 체감했다. 그중에 눈길을 끈 곳은 교회 옆에 자리 잡은 신풍미술관이다.
윤씨 집성촌인 조그만 시골 마을에 미술관을 열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윤장식 이성은씨 부부는 2009년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홀로 된 노모를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었던 아내에게 미술관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이 미술관을 짓겠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은 작은 마을에 무슨 미술관이냐며 비웃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부모가 물려준 땅에 미술관을 지어 문화 혜택에서 소외된 주민들과 문화의 향취를 나누겠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미술관 공사를 마무리할 무렵 우울증을 앓던 한 할머니의 자살 소식이 들려왔다. 미술치료사로도 활동했던 이씨는 이를 계기로 할머니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기로 마음먹었다. “할머니들은 남한테 말 못할 사연들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사시더라고요. 남들이 흉볼까 봐 함부로 터놓지도 못하고요. 그림을 통해 할머니들과 말동무가 되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이씨는 할머니들의 애환이 담긴 그림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미술관 개관전을 서둘렀다. 2010년 7월 16명의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모아 ‘할매가 그릿니겨?’라는 테마로 개관전을 열었다.
신풍미술관은 지난해 사립미술관 제2종으로 인가를 받았고, 지난 4월 16일부터 6월 9일까지 예천 출향작가와 지역작가 작품 30여점을 모아 초대전을 열었다. 초대전은 개관전 때와 달리 유명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미술관은 상설로 연령별 미술치료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지금은 ‘THE PRINT 2013 여류작가 판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제는 한 달에 100여명이 찾을 정도로 어엿한 농촌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부부에게는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해 미술관 문턱을 낮추고 내면에 더 충실한 미술관을 만들어 시골 마을에서도 대를 이어 미술관을 운영하는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윤필교(기록문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