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미래전쟁과 설국열차
입력 2013-08-04 17:38
꼬박 6년이 걸렸다. 티베트 지역의 히말라야 산맥에서 중국 노동자 수천명은 거대한 지하터널을 팠다. 무엇을 위한 터널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들이 아는 건 길이가 50㎞나 된다는 사실뿐이다. 비밀리에 진행된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중국 국가주석이 대규모 취재진을 이끌고 현장에 왔다. 전 세계로 생중계하는 TV 카메라 앞에서 그는 연설을 시작했다.
“기후변화는 중국에 엄청난 문제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갈수록 사막화되는 북부지방에서 많은 사람과 가축이 죽어갑니다. 반면 인도는 히말라야 빙하수를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빙하수를 저장해 북부로 보내는 시설을 완성했습니다. 히말라야 얼음이 다 녹기 전에 중국 영토를 지나는 물의 일정량을 확보하는 건 정당한 자기 방어입니다.”
지난해 출간된 ‘미래전쟁’은 인류가 장차 맞닥뜨릴 전쟁 상황 11가지를 가상의 시나리오로 엮은 책이다. 로이터통신 안드레아스 링케 기자와 슈피겔 환경전문기자 출신의 크리스티안 슈배게를은 11가지 미래전쟁 중 첫 번째로 ‘기후변화-냉각전쟁’을 꼽았다. 두 저자의 시나리오를 좀 더 읽어보자.
인도 총리는 즉각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중국과의 접경지대에 군대를 파견했다. 히말라야에서 내려오는 브라마푸트라강은 인도인 수백만명이 의존하는 생명줄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며칠간 이어진 뒤 중국 주석과 인도 총리가 제3국 부탄에서 비밀리에 만났다. “전쟁을 하자는 거냐”는 인도 총리의 고성이 가라앉을 무렵 중국 주석은 준비해온 제안을 꺼냈다.
“물 전쟁을 막는 길은 히말라야에 다시 얼음이 얼게 하는 겁니다. 서구가 산업화로 초래한 지구온난화 때문에 중국과 인도가 전쟁을 해야겠습니까. 우리는 터널 공사와 함께 지구 냉각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습니다. 서구가 뿜어낸 온실가스에 맞서 냉각가스를 대기권에 살포하면 지구 온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물론 서구에 냉해(冷害)가 닥치겠지만, 중국과 인도가 나선다면 못할 일도 아니지요.”
이후 벌어졌을 상황을 다룬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다. 1984년에 나온 프랑스 원작 만화는 동서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했다. 상대를 제압하려 개발한 ‘기후무기’가 대폭발을 일으켜 빙하기가 찾아온다. 봉 감독은 이 설정을 지구온난화로 바꿨다. 너무 더워진 지구를 감당키 어렵게 되자 79개국 정상이 모여 ‘CW-7’이란 냉각제를 살포키로 결정한다. 평균 온도가 조금 내려가는 수준일 거란 예상과 달리 지구는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이고, 유일한 생존 공간인 설국열차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치열한 계급투쟁이 벌어진다.
저자들의 예측과 영화감독의 상상력은 절묘하게 연결된다. 가상의 이야기지만 허무맹랑하다고 덮어버리기엔 너무 많은 징후가 우리 주변에 있다. 중국은 지금 아스팔트에서 삼겹살을 구울 정도로 폭염에 시달리는 중이고, 지난달 한반도에는 ‘두 개의 여름’이 나타났다.
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이 논의된 지 20년이 넘도록 온실가스 배출 규제는 구속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기후학자들은 2028년에서 2044년 사이 지구온난화가 위험 수위에 도달하리라 예상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데이비드 빅터 교수는 2009년 ‘포린어페어스’ 논문에서 “기후변화로 국익에 큰 손해를 입는 나라들이 일방적으로 지구공학을 추진하는 사태”를 경고했다. 여기서 ‘지구공학(Geo-Engineering)’이란 인공적인 기후 개입, 즉 ‘설국열차’의 ‘CW-7’ 같은 걸 말한다.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