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염운옥] 길고 긴 노예제의 그림자

입력 2013-08-04 17:27


리버풀 국제노예제박물관에는 아이티 출신 예술가 마리오 벤자민의 ‘자유!’라는 조각품이 전시돼 있다. 리버풀은 19세기 대서양노예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던 항구도시다. 이 박물관은 노예제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하자는 취지로 설립되어 2007년 8월 23일 문을 열었다. ‘자유!’는 개관 기념작이었다. 작품 재료는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슬럼에서 모은 폐자동차 부품과 재활용 폐품이다. 슬럼가의 쓰레기로 ‘자유’를 형상화함으로써 벤자민은 서구의 번영을 노예무역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으며, 현대 아이티의 빈곤과 불평등이 노예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웅변한다. 예술을 통해 끝나지 않은 노예제의 그림자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노예제 유산에 대한 고발은 예술의 영역에 머물 수 없다. 지난 7월 초 자메이카, 앤티가 바부다, 아이티, 수리남 등 카리브해 국가들로 구성된 카리브해공동체(카리콤) 14개국이 300여년 만에 노예제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노예무역과 원주민 대량학살의 과거를 보상받기 위해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3개국 정부를 상대로 공동 법정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한 것이다. 사실 노예제로 이득을 본 국가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10여년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자메이카와 앤티가 바부다에는 일국 차원의 보상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이번 결정은 카리콤 14개국이 초국가적 위원회를 구성해 보다 조직적인 공동 노력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지난 6월 영국 정부가 케냐 독립운동 ‘마우마우 봉기’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기로 한 결정이 여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영국은 1950년대 사상자 수만명이 발생한 케냐 독립운동 탄압에 대해 1990만 파운드(약 341억원) 보상 합의안을 발표하고, 과거에 자행한 가혹행위를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고문 피해를 입은 마우마우 운동가의 재판을 승소로 이끈 영국 법률회사 리데이가 이번 카리콤 보상위원회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 보상 요구를 주도하고 있는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의 랄프 곤살베스 총리는 공식 사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보상을 원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자메이카 보상위원회 대표 베레네 셰퍼드는 1834년 노예제 폐지 당시 카리브해 노예플랜테이션 농장주에게 2000만 파운드를 보상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오늘날 2000억 파운드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해방된 노예는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고, 자유를 얻었지만 스스로 힘으로 일어서야 했다.

노예제 피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상해야 할 것인가. 피해자는 몇 명인가. 피해액은 어떻게 추산할 것인가. 노예제 보상에 이르는 길은 험난할 것이다. 벌써부터 영국의 자메이카 고등판무관 데이비드 피톤은 마우마우 판결은 전례가 될 수 없으며 배상은 역사적 문제를 다루는 데 적당한 방법이 아니라고 언급하고 나섰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5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프랑스 국영 CDC 은행에 대한 노예무역 배상 소송에 대해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며 보상을 거부한 바 있다.

노예무역과 노예제에 대해 관련 유럽 각국은 최근까지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노예제에 대한 기억의 부재는 ‘역사적 기억상실증’이라고 할 만큼 심각하다. 수많은 기념비와 기억문화가 존재하는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매우 대조적이다. 1807년 영국의 대서양노예무역 폐지 200주년을 기념하는 2007년 기념행사에서도 주인공은 윌리엄 윌버포스 같은 ‘백인’ 노예제 폐지 운동가였다. ‘가해자’가 ‘해방자’로 둔갑하는 이상한 기념 방식에 대해 흑인 영국인들이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는 영국의 노예제 관여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는 말로 유감을 표현했지만 공식 사과는 하지 않았다. 노예제 배상과 과거 극복은 피해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노예제 유산을 안고 살아가야 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래세대의 양심을 위해 더욱 절실하다. 예외가 관습을 바꾼다는 브레히트의 말을 떠올리며 관련국들이 지혜를 모으기를 기대한다.

염운옥 (고려대 연구교수·역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