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독일 140년 전통 변속기 업체 ‘렝크’ 가보니

입력 2013-08-04 17:15


히든챔피언은 싼값이 아닌 품질로 승부한다

140년 역사의 변속기 제조회사 렝크(Renk). 지난 5월 독일 남부 아우크스부르크 본사에서 만난 이 회사 펠릭스 잉고 전략본부장은 “현재 렝크는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단언했다. 꾸준한 제품 특화 노력을 통해 시장의 벽을 높인 결과, 현재는 경쟁사들이 넘보기 힘든 지위에 올라섰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렝크처럼 독일 히든챔피언 관계자들은 “우리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품질 때문이지 낮은 가격 때문이 아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물론 낮은 가격을 마케팅 무기로 삼는 회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히든챔피언은 가격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실제 히든챔피언 기업들이 생산한 제품들의 가격은 시장 평균보다 10∼15% 정도 높은 경우가 많다. 가격보다 얼마나 유용한가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을 구사한 결과다. ‘얼마나 싼가’보다는 ‘얼마나 품질과 서비스가 좋은가’가 더 중요하다. 고객 눈높이를 만족시킬 품질만 갖춘다면 다소 가격이 비싸도 잘 팔린다는 뜻이다.

렝크 역시 ‘경쟁사와의 차별화’라는 경영 철학에 바탕을 둔 품질 경영에 주력해 왔다. 잉고 본부장은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E 포터 교수의 말을 인용해 “경쟁사, 가격 등 공급자 시장, 대체 제품, 소비자의 기호, 새로운 경쟁자 또는 잠재적 경쟁자가 시장의 5개 주요 변수”라며 “최고 품질로 차별화에 나선 결과 경쟁사나 공급자 시장은 이제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장담은 했지만 렝크사 역시 긴장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아무리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대체 물건이 나오면 금세 시장 자체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잉고 본부장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경우 여전히 마니아가 있긴 하지만 스마트폰, 디지털카메라 보급으로 사실상 시장 자체가 없어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슷한 기능을 하는 대체품목에 밀리지 않기 위해 항상 새로운 제품 개발이나 신시장개척, 소비자 기호 변화 파악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과의 공동 연구·개발(R&D)도 렝크의 품질경영 노하우 중 하나다. 세계 최대 풍력 발전 터빈 감속기를 최근 개발한 것도 미국 대학과 공동 연구의 산물이다. 인근에 뮌헨 공과대학이 위치한 본사 입지도 R&D 전문인력이 끊임없이 수혈되는 비결 중 하나다.

잉고 본부장은 “바다 위에 만들어지는 풍력 발전기의 경우 접근이 어려워 수리가 쉽지 않다”며 “고장 나지 않게 하려고 오류를 최소화하는 데 연구력을 총동원한다”고 말했다.

독일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렝크처럼 히든챔피언으로 분류되는 기업은 평균 매출액의 5.9%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히든챔피언 ‘엔드레스하우저’ 관계자도 “본사 인력 900명 중 270명가량이 연구인력”이라며 “전 세계에 생산라인과 물류센터가 있지만 모든 생산 제품의 균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본사에서 테스트 과정을 꼭 거친다”고 말했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렝크의 생산 과정 역시 철저하다. 직접 견학한 렝크 생산라인에는 공정마다 대형 테스트 장비가 설치돼 있었다. 특히 직원들은 ‘3차원 컴퓨터 그래픽(3D)’ 기술을 이용해 미세한 오류를 잡아내기 위해 열중하고 있었다. 테스트 기기도 직접 생산하고 있다. 2004년에 ‘Renk Test System GmbH’라는 자회사를 설립, 자동차·항공·기차·방위산업용 부품 테스트 시스템을 개발했다.

숙련 인력 양성을 중시하고, 이들이 만족할 만한 근무조건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은 렝크도 다른 히든챔피언과 다르지 않았다.

잉고 본부장은 “생산직 인력은 매년 30∼50명의 견습생을선발해 충원하며 이들은 부단한 재교육 과정을 통해 장인으로 양성된다”며 “50% 이상의 기술 인력이 25년 이상 근속할 정도로 이직이 적고 기술 유출 우려도 덜하다”고 소개했다.

철저하게 경쟁에서 승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직원복지에 관한 경영 방침은 달랐다. 잉고 본부장은 “경제는 달리기와 같아 승자는 한 명”이라며 “모두 힘을 합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낙오자가 없게 하는 사원 복지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우크스부르크= 글·사진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 자문해주신 분들

▲유필화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SKK GSB) 학장 ▲프랑크푸르트 괴테대 옌스 갈 경영학과 교수 ▲남영호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그로브 클라우스 루돌프 부사장 ▲코트라 김평희 글로벌연수원장 ▲독일 만하임대학 중소기업연구센터 소장 미하엘 보이보데 교수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신인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