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18) 히든챔피언으로 가는 길
입력 2013-08-04 17:24 수정 2013-08-04 17:48
“숙련 인력 안정적 공급시스템이 벤치마킹 1순위”
“계속 2등 기업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국내 중소기업인들이 독일을 방문해 히든챔피언의 경쟁력을 직접 확인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극복 방법을 고민한다. 지난 5월 트룸프와 카처사를 방문한 후 프라이부르크의 숙소에 모인 연수단은 각자의 생각을 털어놨고, 밤늦도록 토론을 벌였다. 히든챔피언이 던진 숙제를 풀기 위한 이들의 고민과 토론은 귀국 후까지 계속됐다.
연수단이 공통적으로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은 것은 중소기업에 숙련 인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독일 직업 교육제도였다. 연수단원들은 한목소리로 “대학진학률이 40%대에 그칠 정도로 일찌감치 학생들이 중소기업에서 기술을 배우게 만들어놓은 독일 교육제도는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버릴 사람이 없게 만드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놓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직업 교육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중소기업 직원으로서 자부심이 적고 이직률이 높아 숙련 인력을 만들기 쉽지 않은 현실에 대한 토로가 주를 이뤘다.
자동차 등 기계 부품 생산 업체인 두현분말야금의 권영현 대표는 “중소기업에 취업한 후에도 대학을 가겠다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중소기업을 평생직장으로 인정하지 않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역협회 이은미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고교가 200개에 이르지만 이들 학교 내에서도 고졸 후 취업을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며 “학교 역시 고졸 기술인력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더 높게 쳐주기 때문에 마이스터고 등이 중소기업 숙련 인력 양성 기관이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중장비 부품 제조사 녹원의 이학범 대표는 “대졸자와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이는 고졸 기술직 임금 차이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기업경영 방식 차이가 히든챔피언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웠다는 분석도 있었다. 코트라 김평희 글로벌연수원장은 “독일 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KTX 개통으로 천안·아산지역 땅값이 많이 오를 것’이라며 권유했는데 해당 기업은 ‘우리는 투기꾼이 아니다. 기업 하기에 좋은 입지인지 여부만이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기업 고유 영역과 관계없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하는 독일 기업인들의 정신이 지방 곳곳에 강소기업을 키워낸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인들은 히든챔피언 기업들의 지역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공장 생산라인이나 팀 운용 등 세밀한 부분에서도 배울 점을 많이 발견했다고 전했다. 식품 가공기계 생산업체인 일성테크의 서보성 부사장은 “물론 R&D 센터 등 핵심적인 부분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공장을 견학하면서 ‘이런 것은 우리와 다른 식으로 하는 구나’라고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히든챔피언 반열에 오르기 위한 방법론 측면에선 의견 차이가 있었다.
인터씨엔 박성호 대표는 “히든챔피언 기업이 강소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이라며 “일등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다리를 놓거나, 제품을 확실히 차별화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성테크 서 부사장은 “지속적인 설비투자를 통해 꾸준히 기술 경쟁력을 높이면서 일등 기업이 실수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는 “성능, 가격, 애프터서비스 세 가지가 기업 실적을 좌우한다”며 “성능이 좋으면 가격을 높게 책정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고, 성능이 달릴 경우 애프터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식으로 경쟁력을 키워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 조성, 특히 교육 여건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에는 모두 동조했다. 금형·제관 전문업체인 컴윈스의 김태용 부사장은 “사회 저변에 퍼져 있는 기술자나 상인을 천대하는 의식이 바뀌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원 임대현 선임연구원은 “전문직 종사자와 많게는 10배까지 임금 차이가 나는 비정상적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며 “기술직 근로자로 살아도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특히 교육비 문제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업인들은 “아플 때, 직장을 잃었을 때, 노후문제 이 세 가지 걱정을 덜어주는 사회보장 체계가 잘돼 있다면 사회 전반이 안정되고 효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라이부르크= 글·사진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