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연극 제작비 하나님이 주신다고요?… 선교공연 티켓은 ‘문화 헌금’

입력 2013-08-02 16:28


기독교문화 제작 기도보다 한숨 소리 더 큰 까닭은

20년차 영화제작자로 기독 다큐멘터리 영화 ‘회복’을 기획한 히즈엠티선교회 이임주(52·여) PD는 그가 제작한 영화를 불법으로 유포한 목회자에게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PD는 저작권 관련 기관의 수사로 적발된 200여명에게 전화해 유포한 이유를 물었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목회자였다. 이들 중 한 목회자는 “어차피 선교 영화인데 저작권은 하나님께 있지 않느냐”며 오히려 그에게 반문했다. 또 “영화에 들어간 모든 비용은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이를 걱정하는 것은 기도가 부족한 것”이라며 문화선교를 위해 교인들과 극장에서 영화를 볼 것을 종용한 이 PD를 질타하기도 했다.

이 PD는 “자금과 전문인력 부족 등 열악한 제작환경에도 최고의 기독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억대 빚을 내며 충무로의 상업영화 제작진과 촬영하는데 교회에 그냥 가져오라는 목회자가 적지 않다”며 “수익이 있어야 지속적으로 양질의 기독 영화를 찍을 수 있는데 아마도 목회자들이 영화 제작 현실을 몰라서 그러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최근 김종학 PD의 자살로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기독문화 콘텐츠의 제작현실 역시 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문화사역자의 경우 빠듯한 제작비 문제뿐 아니라 주 소비층인 20∼40대 젊은 성도들의 무관심, 교회 결정권자인 목회자와 장로들의 문화선교에 대한 인식 부족까지 겹쳐 대중문화인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직면해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문화선교 전문가와 사역자들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문화선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기독문화콘텐츠에 정당한 가치를 지불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나아가 사역자를 후원하는 문화도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뿌리 깊은 ‘공짜 문화’

“교계는 뭐든지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막 11:3)는 성경말씀을 앞세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기독문화 콘텐츠니까 당연히 무료로 해야 한다는 거예요.”

2008년부터 매년 ‘진도국제씨뮤직페스티벌’을 기획한 허건(48) 감독은 교계 내 깊게 뿌리 내린 ‘공짜문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허 감독은 “교회는 비영리 단체니까 뭘 하든 공짜로 성도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꽤 많다”며 “이렇듯 ‘기독 문화=공짜’로 보는 인식이 교계 관행으로 굳어지면서 기독문화콘텐츠 제작환경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후원금 부족으로 올해로 6회째인 페스티벌을 취소한 허 감독은 이러한 공짜 문화가 기독문화 발전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적자인 제작환경에서 여름과 겨울 페스티벌을 6회 정도 진행하니 개인뿐 아니라 회사도 파산 상태다. 제작환경이 이렇다보니 재기할 수 있는 그림이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제작자가 투혼으로 제작하고 기도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제작비가 없으면 공연의 질 저하는 물론이고 제작 자체가 불가능하다. 문화에 대한 가치 지불을 거부하는 관행은 결국 기독문화를 말살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 뮤지컬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뮤지컬 ‘바울’ ‘화랑’ 등을 무대에 올려 교계 안팎의 주목을 받은 MJ컴퍼니 역시 교계의 ‘공짜 문화’에 익숙한 일부 관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MJ컴퍼니 관계자는 “종종 초대권으로 공연을 관람한 관객이 ‘이런 내용은 교인들도 함께 봐야 한다’며 또다시 초대권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공연을 선교의 일환으로 봐 주시는 것은 좋지만 마치 교회에서 제공하는 무료 식사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을 보면 당황스럽다. 일부지만 이들을 접할 때마다 기독문화에 대한 교계의 인식 전환이 절실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잘못된 선입견과 무관심

공짜 문화와 함께 문화사역자의 창작 의욕을 꺾는 것은 기독 문화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과 무관심이다. 적지 않은 문화사역자들이 한국교회가 문화사역이 가진 파급력에 대해 잘 모르거나 과소평가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이 PD는 영상시대에 사는 현대인의 추세에 발맞추기 위해선 전도와 선교의 중심축이 영상을 기반으로 한 문화선교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대중화로 각종 영상이 손안에 들어왔음에도 목회자나 장로님은 종이 문화가 더 익숙하다는 이유로 영상물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며 “교회 건물이나 방송실 등 외적인 부분에만 투자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라고 꼬집었다.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대중음악 형식의 기독교 음악) 사역자 한웅재(43) 목사도 문화사역에 대한 교회 지도자들의 선입견이 깨져야 한다고 했다. 한 목사는 “문화사역을 추구하는 교회들이 극장 등 문화공간을 만드는 게 한동안 유행처럼 번진 때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를 채울 수 있는 콘텐츠가 없다. 제작자로서 현재는 ‘기독교 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본다. 지금은 무엇보다 문화사역자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줘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문화사역에 대한 성도들의 무관심도 기독 문화의 입지를 좁히는 한 요인이다. CCM 음반·공연 홍보기획사인 추연중(42) 추미디어&아트 대표는 “최근 찬양사역자 대신 크리스천 연예인을 부르는 교회가 크게 늘었다. 성도나 지역 주민들이 찬양사역자보다 연예인에게 더 관심을 갖기 때문”이라며 “홍보 채널이 제한적이라 현장에서 소비자를 만날 수밖에 없는 CCM 사역자들의 무대가 계속 줄어든다면 CCM 문화는 향후 더 침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 대표는 이러한 현상이 CCM 장르의 기형적 편중화를 불러온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CCM이 동시대 문화 조류를 반영하면 ‘세속적’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면서 “결국 CCM 가운데선 소위 ‘된다는 음악’이 예배음악이다. CCM 시장이 계속 예배음악 일변도로 가게 되면 ‘기독문화의 다양화와 활성화’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초교파 전략적 연합·투자 필요

기독문화콘텐츠 제작환경의 어려움을 해결키 위해 문화선교 전문가와 사역자들은 교회 내 정당한 문화 소비가 정착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성빈(55) 장신대 기독교와문화학 교수는 “한국교회 대부분은 기독 문화 생산에 투자할 만한 구조를 갖추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이는 기독 문화 소비계층과 교회 재정의 사용처를 결정하는 이들 간 세대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목사 한두 명이 문화사역자를 지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대신 그는 “교회 지도자들이 나서 성도들이 선교적 문화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기독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교계 전반의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추태화(58) 안양대 기독교문화학 교수는 “현 기독문화 제작환경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개교회 위주의 문화 선교활동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 교수는 “한국교회는 ‘내 교회’를 키우는 데는 열성적이나 이웃교회, 타 교파를 섬기고 돕는 데는 인색한 편이다. 이는 문화 선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며 “‘우리 교회 헌금으로 다른 이를 돕는다’기보단 ‘한국교회 선교와 미래세대를 위해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문화선교를 위해 초교파적으로 연합해야 한다”고 권했다.

한편 문화사역자들은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가 현재보다 더 열린 자세로 기독문화를 받아들일 것을 요청했다. 한 목사는 “교회는 기독문화에 일정한 스타일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젊은 크리스천이 교회 밖으로 나가기 일쑤”라며 “현재 예술계에 몸담은 이들이 교회서 맘껏 놀 수 있도록 교회가 배려해야 기독 문화가 풍성해질 수 있다”고 제언했다.

추 대표 역시 성도들이 문화 사역에 ‘교회 문화’와 ‘세상 문화’로 나누는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건 무리라고 했다. 그는 “CCM 안에도 대중문화만큼 기발하고 좋은 콘텐츠가 많은데 들어줄 무대와 관객이 없어 안타깝다”면서 “좁은 시선으로 보면 기독 문화는 세상과 격리될 수밖에 없다. 교회 당회와 성도들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기독 문화를 접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