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전정희] 붉은악마, ‘쪼잔’하다
입력 2013-08-02 18:09
한마디로 ‘쪼잔’하다.
지난달 28일 서울 잠실에서 치러진 한·일 간 축구 응원전을 통해 보여준 양국 응원단 및 응원을 둘러싼 양국의 감정 처리가 말이다. 이날 욱일기(전범기)를 휘날린 일본 응원단 울트라닛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횡단막을 내걸은 ‘붉은악마’ 모두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것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지난달 30일 일본 문부과학상의 “그 나라 국민 수준이 의심스럽다”는 발언을 들으면 그들과 말 섞기조차 싫어진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구호는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의 얘기다. 그는 민족사관을 수립했다.
한데 축구경기에서 양측은 애국심 대결을 벌였고, 경기가 끝난 후 양국 언론이 감정에 불을 지피며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이날 양측 응원단에 대해 대한축구협회 등이 제재에 나서자 ‘붉은악마’는 후반 응원을 보이콧해 버렸다. 성숙하지 못한 자세다. 잠실 경기는 우리 안방에서 벌어졌고, 응원단은 손님을 맞은 주인 격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이라는 건 일본을 빗댄 얘기다. 맞다. 그들은 쪼잔하고 뻔뻔하다. 위안부 문제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말할 수 없이 뻔뻔하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다. 우리는 늘 현재적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역사, 근대의 역사가 일본에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임진왜란 전만 하더라도 우리도 왜(일본)에 ‘갑’이었다. 막부 장군이 보낸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가 조선의 조하(朝賀·임금에게 하례하는 일)의식에 참여해 예를 갖췄다. 쉽게 말해 조공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왜와 대등한 자격으로 사절을 교환했다. 소위 조공을 받을 정도로 갑이었던 조선이 교린 정책을 내세운 건 바보여서가 아니다. 속으로는 기미정책을 펼쳐 실리를 모두 얻었다. 기미란 말의 굴레와 소의 고삐를 가리키는 말인데 고삐를 느슨하게 잡되 끈은 놓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데 이러한 우월적 지위는 명·청나라라는 사대적 안보우산에 기생하다 종국에는 세계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일본 식민지가 되는 치욕을 겪으며 추락한다. 멍청한 리더와 세도권력이 나라를 ‘말아먹은’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신채호 선생의 말대로 ‘역사를 잊지 않고’ 극복해 오늘에 이르렀다. 일본이라는 ‘사나운 이웃’이 우리를 자극했던 점도 발전의 동력이었다.
그런데 요즘 ‘붉은악마’와 같은 젊은층의 대일본 역사 인식을 인터넷 등을 통해 살펴보면 당혹 자체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세대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런 비이성적, 비합리적 대일관을 가지고 있을까 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엄밀히 말해 일본보다 더 무서운 적은 동북공정 등을 일삼는 중국이다. 그들과 우리는 일대일의 공정한 게임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중국을 수백년 사대한 이유가 있다. 사대하지 않으면 먹혔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속된 말로 ‘짱깨’라는 우월적 지위에서의 중국 비하는 한·중수교(1992년) 이후 20여년 정도다. 우리가 공녀(貢女) 바치며 살았던 게 한·중관계다. 그에 비하면 일본은 비록 ‘구원(舊怨)’을 잊지 말되 협력과 견제로 상생할 파트너다. 일본을 지렛대 삼는 ‘블록경제’ 등으로 등거리 외교를 해야 한다.
일본은 섬나라의 폐쇄성 때문인지 그 근본이 쪼잔하다. 반면 우리는 대륙적 기질이 있어 호방하다. 그 호방한 공식 응원팀이 쪼잔하게 대응해선 안 된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전정희 디지털뉴스센터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