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버매트릭스] 가난한 구단은 이길 수 없다고?… 야구는 수학이다!
입력 2013-08-03 04:08
2011년 11월 야구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영화 한 편이 개봉됐다. 바로 ‘머니볼(Moneyball)’이었다. 이 영화는 메이저리그 만년 최하위 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구단주 빌리 빈(브래드 피트)이 2002년에 일으킨 20연승의 기적을 다루고 있다. 20연승의 비결은 바로 ‘세이버매트릭스(Sabermatrics)’였다.
◇저평가된 가치를 찾다=미국 메이저리그 2002년 시즌 개막 당시 오클랜드가 지출한 연봉 총액은 4000만 달러였다. 이에 비해 부자 구단인 뉴욕 양키스는 세 배인 1억2600만 달러를 썼다. 그러나 그해 오클랜드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20연승의 기적과 함께 양키스와 동일한 103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다. “쟤들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타 구단 관계자들은 경악했다.
당시 빌리 빈 오클랜드 구단주는 이렇게 말했다. “양키스의 방식을 따라 해선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게 하다간 매번 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우리보다 세 배나 더 많은 돈을 가지고 구단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빈은 자신이 선수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를 평가하는 기존 방식을 거부했다. 기존의 선수 평가 기준에서 보면 자신은 앞날이 보장된 유망주였다. 그러나 선수 생활은 실패로 끝났다. 빈은 기존의 선수 평가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사례가 자기 자신이라고 믿었다.
빈은 구단의 재정이 열악해 몸값이 낮은 신인이나 저평가된 선수들을 싼값으로 데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빈이 선수들을 고를 때 눈여겨본 것은 타율, 홈런, 도루가 아니라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출루율과 장타율이었다. 빈의 도박은 통했다. 기존 관점에서 보면 문제투성이인 선수들은 숨겨진 재능을 맘껏 발휘했다.
◇세이버매트릭스의 세계=세이버매트릭스는 ‘기록의 스포츠’인 야구를 통계학적, 수학적으로 분석해 선수의 재능을 평가하는 방법론이다. 일반적으로 3할대 타율을 기록하는 타자가 2할대 타율에 그친 타자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세이버매트릭스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궁금증을 가졌다. ‘과연 일반인들이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통계는 믿을 만한가. 현재 쓰고 있는 통계들보다 더 정확하게 선수를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궁금증은 기존의 통념을 뒤바꿔 놓는 결론에 이르렀다. ‘타율보다 출루율과 장타율이 더 중요하다. 도루는 선수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점수에 큰 기여를 하지 않는다. 희생번트는 무의미하다. 타점은 그 타자의 능력을 평가해 주지 않는다. 에러 숫자로 그 선수의 수비 능력을 평가할 수가 없다.’
결국 세이버매트릭스는 야구를 통계적으로 좀 더 정확하게 나타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존 모젤리악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단장은 세이버매트릭스에 대해 “선수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참고 문헌”이라고 말했다.
◇불공정한 게임에서 이기는 법=영화 ‘머니볼’의 원작엔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과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프로 스포츠는 이미 누가 더 돈을 많이 쏟아부을 수 있는지를 겨루는 게임으로 바뀌었다. 부자 구단들과 가난한 구단들은 그야말로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 부자 구단들은 좋은 선수들을 긁어모아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그런 성적을 바탕으로 더 많은 수익을 올린다. 가난한 구단들은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데리고 있을 수 없다. 천정부지로 뛰는 몸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자 구단들은 이런 선수들을 사 모아 계속 좋은 성적을 올린다. 이런 현상은 메이저리그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가난한 구단이 부자 구단을 꺾는 비장의 무기가 바로 세이버매트릭스다.
가난한 오클랜드를 이끌었던 빈은 숨겨진 보석을 찾아내 가공한 다음 되팔았다. 그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필요한 선수들을 확보했다. 오클랜드가 열악한 재정 상태에서도 꾸준히 놀라운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난 시즌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팀인 오클랜드는 올해도 1일 현재 63승45패로 서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다.
기존 통념을 깨고 저평가된 가치를 찾는 세이버매트릭스는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금융계와 비즈니스계 등 여러 분야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