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도 칼럼] 밥부터 같이 먹자!
입력 2013-08-02 16:21
도시락을 싸가지 못해 수돗물로 배를 채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32년 전 장로회신학대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학교 뒷산에 아차산 약수터가 있어서 그 약수로 점심을 때운 날이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루 세 끼니를 다 챙겨먹는 일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만나면 서로 ‘진지 드셨습니까?’라고 인사말을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밥 굶어본 일이 거의 없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밥 한번 먹자’는 인사말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너무도 쉽게 ‘우리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밥’을 통해 소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대인들. 하지만 밥 한번 먹자고 말해놓고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기 일쑤입니다.
너무도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인사처럼 툭 던져놓고는 서로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아무 뜻 없이 그냥 인사치레로 해보는 말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습니다.
밥을 나눈다는 것은 음식과 시간을 함께하는 것만 아니라 사랑과 우정을 함께 나누는 것을 넘어서 미래의 꿈과 비전도 함께 나눈다는 의미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저 가벼운 인사말로 치부해버릴 말이 결코 아닙니다.
밥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부터 확실하게 만날 수 있는 날을 정해놓고 사랑과 의지를 담고 밥 먹을 시간을 약속하고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정말 밥에 대한 의미와 철학을 안다는 사람들부터 ‘밥 한번 같이 먹자’라고 인사하기보다는 “밥부터 같이 먹자!”라고 인사하면 어떨까요? 약속시간부터 정해야 진정성을 가지고 마음도 나누는 일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때서야 비로소 함께 밥상에 앉으면 서로 얼굴만 보아도 밥맛이 나고 살맛도 나는 상생의 삶이 비로소 일어날 테니 말이지요.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밥상에서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제일 먼저 찾아가신 곳이 혼인 잔칫집 밥상이셨고,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도 언제나 밥상에서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최후의 만찬이 그 한 예이지요.
“제 것을 제 것이라 여기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도행전 4장 32절의 말씀처럼 밥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은 또 누가 먹어도 좋도록 되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밥상으로 올라 온 음식들을 알아차리며 밥 앞에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밥심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아무 뜻과 목적 없이 그냥 ‘밥 한번 같이 먹자’라는 빈말을 주고받는 대신에, 진정성을 가지고 ‘우리 밥부터 같이 먹자!’는 말로 인사를 나누고 의지도 나눈다면 입이 열리고 마음도 같이 열려서 소통과 상생의 삶이 마침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도 밥부터 같이 먹을 때에야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며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요즘 신문이나 TV를 보면서 여기저기서 정전 60주년을 기념하여 DMZ 특집물을 많이 보도하고 방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남과 북이, 대립과 갈등 속에 있는 동과 서가 밥부터 같이 먹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서로 입장 차이를 좁히지 않는 우리나라의 진보와 보수 간에도 ‘밥부터 같이 먹자!’라는 이 말을 신뢰와 의지를 담아 진정성 있게 서로서로 주고받으며 실제로 한 밥상에 마주 앉아서 마음 나누기를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밥심으로 하나되어 굶주린 북한 동포들과 절대빈곤층이 기다리고 있는 아프리카 빈민촌 아이들도 살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아직도 여전히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있는 고통의 현장도 밥심으로 화해와 일치의 역사가 일어나며, 밥심으로 죽임을 넘어선 살림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힘겨루기, 패가르기, 키재기하는 곳마다 밥으로 화해하며, 밥으로 하나되며, 밥으로 사랑하고, 밥으로 섬기며, 밥으로 소통과 상생하는 그 날이 속히 오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일공동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