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사회 크리스천의 언어는?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지난달 17일 3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살인 등)로 백모(30)씨를 붙잡았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백씨는 검거 1주일 전인 지난달 10일 부산에 사는 김모(30·여)씨 집 앞에서 흉기로 김씨를 살해했다. 경찰 조사 결과 백씨와 김씨는 모 인터넷 사이트의 정치, 사회 갤러리에 활발하게 글을 올렸고 지난해 초부터 개인적 문제로 막말을 주고받다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원정 살인’이란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말하는 게 무서운 세상이 됐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은 막말과 욕설, 유언비어와 괴담의 바다로 변하고 있다. 오프라인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은 막말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의 ‘귀태(鬼胎·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뜻)’ 발언 이후 같은 당 임내현 의원이 성희롱성 발언 등으로 잇단 구설에 올랐다. 그러자 지난달 22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여야 막말 금지 공동선언을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사흘 후 열린 국회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국정조사 보고에서 여야 의원들은 막말에 가까운 설전을 벌이며 대립했다.
정치권뿐이 아니다. 준엄해야 할 법정은 판사의 막말로 곤욕을 치렀고. ‘신의 언어’를 구사해야 할 교회에서조차 저속어가 난무한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 망언은 그칠 줄을 모른다. 막말 피로감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말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가 있어왔다. 솔로몬 왕은 3000년 전 이를 간파하고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으니 혀를 잘 쓰는 사람은 그 열매를 먹는다”(잠 18:21)고 기록했다.
구글 검색엔진에서 ‘막말’이란 단어를 입력하면 관련 검색어만 697만개가 뜬다. 막말의 사전적 의미는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 또는 그렇게 하는 말’이다. 같은 뜻으로 ‘막소리’가 있으며 유의어로는 ‘상소리(거칠고 상스러운 말이나 소리)’도 있다.
욕설이나 언어폭력, 독설 등은 뜻은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얽히고설키며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있다. 도대체 왜 막말이 난무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사회의 불안정을 꼽는다. 사회가 자신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공적인 공간에서 일탈적인 행위로 막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막말은 또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없어지는 데서 생긴다. 비정한 사회의 한 단면인 셈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돌파구를 찾고 있다. 스피치 학원을 찾아다니며 청산유수 같은 말을 하기 원한다. 실제로 스피치 학원 등이 크게 증가한 것은 이에 대한 ‘목마름’을 방증한다. 교육업계에 따르면 스피치 교육 수강생은 해마다 늘어 지난해까지 250% 증가율을 보였다. ‘화술’ 분야 도서 판매도 늘어 교보문고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25.5% 증가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막말 파동의 해결법은 스킬 문제가 아니다. 방송사 아나운서 출신인 신은경씨는 최근 펴낸 ‘홀리스피치’에서 “말만 잘 해서는 안 되며 진심에서 우러난 진실한 말이 중요하다”고 했다. 현역 아나운서인 김재원씨도 ‘마음 말하기 연습’이란 책에서 “우리가 하는 말이 백김치 같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꿈의교회 김학중 목사는 “우리 사회에는 넘쳐나는 막말들을 정화시켜줄 공간과 기회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심의 숲이 도시의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키듯 막말 공해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에 맑고 신선한 언어인 ‘정(情)말’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情(정)말’이란 특별한 언어가 아니다. 사랑의 육성, 살리는 말이다. 귀신을 쫓아내며(마 8:16) 병자를 치유했던(마 8:16) 능력의 말씀이다. 사실 기독교와 말의 관계는 각별하다. 세상이 하나님 ‘말씀’으로 창조됐고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았고(눅 4:4), 말씀을 지켰으며(요 8:55), 말씀을 전했다(막 2:2). 천지는 없어져도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마 24:35). 그가 말씀하시면 그대로 됐다. 저명한 기독교 변증가였던 프란시스 쉐퍼는 이런 신의 존재를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했다.
지난 6월 7일 밤 서울 광진교 아래 난간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고교생 이모(15)군을 살린 것은 경찰의 ‘情말’ 때문이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서울 광진경찰서 광나루지구대 임철한(45) 경사 등 4명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이군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면서 난간 쪽으로 내려갔다. 이군이 “살기 싫다”고만 하자 임 경사는 “부모님보다 먼저 죽는 건 불효다. 부모님을 생각해보자”고 했다. 잠시 생각하던 이군은 심경의 변화를 보였고 자살 시도를 포기했다. 한 마디 말과 경찰의 적극적인 행동이 생명을 살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회가 사회에 공급해야 할 사랑의 언어는 바로 이와 같은 ‘情말’이라고 했다. 총신대 라영환(조직신학) 교수는 “사랑의 언어는 입술에 발린 말이 아니라 한 마디를 하더라도 진심과 정성을 담아야 한다”며 “구체적인 행동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조언했다. 라 교수는 “사랑의 언어가 수반될 때 진정한 하나님 말씀인 복음이 전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야고보서 3장 1∼12절은 성경의 대표적인 ‘혀 사용 설명서’로 꼽힌다. 세계적인 조직신학자인 싱클레어 퍼거슨은 “일관된 언행을 위해 지혜를 구하자”고 말했다. ‘말의 힘’의 저자 광염교회 조현삼 목사는 “화를 내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각의 파트너를 예수로 바꾸는 일”이라고 제안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나 내가 처한 상황에 벌컥 화를 내기 전에 예수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막말’ 입 무서운 세상… 사랑의 입으로 ‘情말’
입력 2013-08-02 16:37 수정 2013-08-02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