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영화연기학교 ‘이글루’ 운영 황운영·김은진씨 부부, “교감·학습 통해 견공 배우로 거듭나죠”
입력 2013-08-01 19:33 수정 2013-08-01 22:33
“옳지, 잘한다.”
황운영(57)씨가 오른손에 방울을 들고 흔들자 생후 3개월 된 길고양이 ‘장화’가 황씨를 따라왔다. 막대로 참치 캔을 치자 벌레를 쫓던 장화가 동작을 멈추고 황씨를 바라본다. 지난 31일 오후 10시30분쯤 서울 전농동 서울시립대 근처 골목길. 영화 촬영을 앞두고 황씨는 고양이를 주변 환경에 적응시키는 훈련에 한창이었다. “지난 석 달간 장화와 24시간 붙어 있었다”는 황씨는 “장화의 낯가림이 많이 줄어 다행”이라며 웃었다.
황씨는 국내 유일의 동물영화연기학교 ‘이글루’를 운영 중인 ‘동물연기 전문가’다. 20년 전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대기업을 그만뒀다. 평소 좋아했던 동물들과 함께하는 일을 찾다가 1999년 서울 청담동에 애견카페를 열었다. 한국 최초였다. 그해 입소문을 듣고 봉준호 감독이 카페에 찾아왔다. 영화에 출연할 동물 배우를 구하던 감독에게 황씨는 시츄와 미니핀, 푸들 두 마리를 소개했다. 이후 황씨의 동물들이 ‘시월애’ ‘비천무’ ‘S다이어리’ 등의 영화에 캐스팅되면서 2004년부터 ‘동물연기 지도’가 그의 직업이 됐다.
동물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걸 황씨는 ‘훈련’ 대신 ‘학습’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학습은 정해진 매뉴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람과 교감할 수 있도록 동물의 마음을 여는 작업”이라고 했다. 동물의 나이, 종류, 종에 따라 학습 방법도 달라진다.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을 중요시하는 동물이라 미리 촬영 장소에 데려가 익숙해지게 해야 한다. 개는 주인이 없으면 불안해하기 때문에 촬영장에 가서도 항상 곁에 있어야 한다. 10년간 동물연기학교를 운영하며 얻은 노하우다. 황씨는 “획일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동물만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씨의 동물 가족은 개와 고양이, 토끼, 비둘기를 넘어 쥐까지 포함해 180여 마리나 되는 대식구다. 사료값을 포함한 유지비만 한 달에 1000만원이 넘는다. 갈 곳 없는 개와 버려진 고양이까지 식구로 들이다 보니 초창기에는 사료값이 없어 동물들을 굶겨야 했던 적도 있다. 견디다 못해 지인에게 쌀을 빌려 사람 먹는 밥을 동물과 나눠먹기도 했다. 연기학교가 알려지고 상황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손이 많이 든다. 그러나 가끔 친구들이 “사서 고생 말고 동물 좀 팔라”고 하면 그는 “자식 같은 놈들을 보낼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황씨의 꿈은 돈을 모아 경기도 이천의 1500평 동물학교를 3만평이 넘는 큰 산으로 옮기는 것이다. 식구들이 늘어 너무 비좁아졌기 때문이다. 동물들에게 넓은 환경을 제공해주려고 황씨는 쉴 틈 없이 일한다. 함께 살던 동물이 죽으면 화장해서 유골에 이름을 붙인다는 그는 아내 김은진(51)씨에게 “내가 죽으면 묘지 옆에 저 아이들도 함께 묻어 달라”고 말해뒀다. 황씨는 “나는 동물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조련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라며 웃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