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저도의 추억

입력 2013-08-01 18:40 수정 2013-08-01 19:20

경남 진해에서 해군 고속정으로 30분쯤 달리면 바다 한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작은 섬과 만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35년 만에 찾아서 유명세를 탄 저도다. 이 섬의 원래 이름은 학(鶴)섬이었다.

학섬이 저도로 바뀐 데에는 설화가 한몫을 했다. 옛날 구렁이가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뒤를 쫓았다. 개구리는 사력을 다해 줄행랑을 쳤으나 학섬 근처에서 잡힐 위기에 처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학섬이 돼지처럼 변신해 구렁이를 물리치고 개구리를 구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개구리는 학섬으로 올라와 화석이 됐고, 분을 못 이긴 구렁이는 바다에서 화석이 됐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사람들이 학섬을 도야지섬이나 돝섬으로 불렀다. 이러다가 돼지섬을 뜻하는 저도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저도는 1920년 일본군 탄약고로 사용될 만큼 군사요충지였다. 54년 해군이 관리하면서 휴양지로 탈바꿈했다. 73년엔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靑海臺) 본관이 완공됐다. 육지에 청남대가 있다면 바다에는 청해대가 있다.

섬 전체가 해송 동백나무 등으로 덮여 있고, 9홀짜리 골프장과 산책로가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설치한 계단을 내려가면 청정 해역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해군 사이에 회자된다.

재임시절 박정희 대통령은 저도에 사슴 네 마리를 방목시키게 했다. 사슴을 돌보기 위해 해군 중위가 차출됐다. 박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를 잃고 난 뒤 저도에 들르면 슬픈 눈으로 사슴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깊은 관심을 보인 사슴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중위가 상부에 보고하자 육두문자와 함께 불호령이 떨어졌다. 당장 살려 내라는 것이었다. 급한 김에 알았다고 했지만 죽은 동물을 어떻게 살려 낸단 말인가. 중위는 해군사관학교 동기들에게 부탁하는 등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죽은 사슴과 덩치가 비슷한 사슴을 구해 저도에 풀어놓았다. 그 후 저도를 방문한 박 대통령은 사슴이 바뀐 줄 모르고 ‘그 사이에 사슴이 많이 컸다’는 말만 혼잣말처럼 했다고 한다.

저도 해변에는 돌멩이와 조개껍데기가 널려 있어 맨발로 산책하기에는 아주 불편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전두환 대통령이 행차할 때에는 동해나 서해에서 바다 모래를 수송선으로 실어와 인공 백사장을 만들었다. 대통령들이 바다낚시를 할 때에는 해군 잠수부들이 잠수하고 있다가 미리 준비한 싱싱한 생선을 낚싯바늘에 걸어준 적도 있다고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