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용상] 캠퍼스 性범죄, 재발 방지 대책있나

입력 2013-08-02 04:22


고려대 남학생이 같은 학교 여학생 10여명을 성추행했다는 ‘풍문’이 들려온 건 일주일쯤 전이다. 이를 전한 이에게 “사실이라면 그 사람 컴퓨터부터 압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가해자가 범행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었다는 얘기에 신경이 쓰였다.

취재 결과 풍문은 사실이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유명 미술대학에서 두 달 사이 성폭행과 성추행 사건이 잇달아 벌어졌다. 규율이 엄격한 육군사관학교에서조차 남자 생도가 술에 취한 후배 여생도를 성폭행했다. 캠퍼스 성범죄 중 이렇게 알려진 것보다 묻혀버리는 게 훨씬 많으리란 건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다. 이번 사건이 그 증거다.

가해 학생이 무려 2년에 걸쳐 같은 학교 여학생을 19명이나 추행하며 동영상을 ‘수집’하는 동안 이런 사실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더구나 이 범행은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으로 학내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시기에 버젓이 자행됐다. 학교 측이 ‘재발 방지’를 외치는 동아 캠퍼스 한켠에선 다른 성범죄가 벌어지고 있었다. 학교는 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학교 측이 이번 사건을 스스로 경찰에 알린 점이다. 가해자의 컴퓨터부터 확보해야 동영상 유출 등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신속히 경찰에 알려 압수수색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의 컴퓨터 속 영상은 언젠간 ‘비수’로 돌변해 피해자들을 다시 공격할 것이다.

마동훈 고려대 대외협력처장이 31일 기자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고려대는 학교의 ‘명예’보다 ‘사건의 본질’과 ‘피해자’에 중점을 둬 대응해야 한다. 학교 구성원들의 온라인 게시판은 지금 명예가 실추됐다고 떠들썩하지만, 정작 지혜를 모아야 할 건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캠퍼스를 만드는 일이며 그것이 명예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자성의 분위기와 적극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이용상 사회부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