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돈 빼먹고 전산오류·손실 은폐… 증권사 더위 먹었나

입력 2013-08-01 18:03 수정 2013-08-01 22:07


불황에 휩싸인 금융투자업계의 내부통제가 삐걱대고 있다. 전산오류와 허위보고, 고객자금 횡령 등 사건·사고가 잇따르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내부통제 강화를 강조했지만 역부족이다. 실적 부진에 따른 경쟁 심화 때문에 도덕적 해이, 잦은 실수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단독 양시훈 판사는 지난 17일 “한화투자증권이 고객에게 고지한 수익률대로 펀드 투자수익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펀드투자자 김모씨가 제기한 투자금반환청구소송(국민일보 7월 11일 13면 보도)에서 원고일부 승소 판결했다. 김씨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 화면에서 확인된 잔액보다 약 5440만원 적은 금액이 입금됐다고 주장했다. 한화투자증권은 화면의 수익률과 유가평가금액 등이 실제보다 컸던 이유는 대출금이 평가금액에 포함된 단순 전산오류 때문이라고 맞섰었다.

법원은 청구 대부분을 기각하면서도 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주문과 함께 결국 투자자의 손을 들어줬다. 전산오류가 투자자에게 정신적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한 것이다. 양 판사는 판결문에서 “증권사가 전산관리를 정확하게 하지 않은 과실이 인정된다”며 “이 때문에 김씨가 환매시기를 결정할 때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할 수밖에 없었다”고 판시했다.

100억원대의 손실을 감추려다 결국 해고된 증권사 직원도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1일 허위보고로 채권 손실을 덮은 채권담당 직원 A차장을 해고했다고 밝혔다. 채권을 대량으로 매매한 A차장은 지난 6월 ‘버냉키 쇼크’로 채권 가격이 급락하자 순식간에 100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회사에 끼치게 됐다. A차장은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보고서를 조작했지만 재무팀이 수시 결산을 하는 과정에서 잔고가 맞지 않아 허위보고가 들통 났고, 내부 감사를 거쳐 해고됐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대규모 금융사고가 발생한 하나대투증권 서울 삼성동지점에 대해 특별검사에 착수했다. 이 지점 B차장은 고객 자금을 모아 투자했다가 100억원대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자 종적을 감췄다. 금감원은 내부통제 관리, 다른 증권사 직원의 개입 여부 등을 면밀히 조사할 방침이다.

고객의 동의를 받지 않고 증권사가 유가증권을 임의로 매매하는 불법 관행도 여전하다. 최근 한국투자증권, 한맥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에서는 임의매매 등이 적발되며 임직원들이 문책 조치됐다.

금감원은 지난 11일 증권·선물사 준법감시인을 모아 내부통제 강화 워크숍을 여는 등 금융사고와 민원 감축에 안간힘이다. 하지만 분쟁은 늘어나고만 있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증권·선물사들에 제기된 민원·분쟁은 1023건으로 지난해 하반기(757건)보다 35% 늘어났다. 특히 과도한 수익 보장, 불충분한 위험성 설명 등 ‘부당한 가입권유’ 민원·분쟁은 같은 기간 113% 뛰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실적 부진, 구조조정 칼날에 직원들이 많은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