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이 미쳤다] 2009년 이후 33% 뜀박질… 집값 60% 넘었지만 매매 잠잠
입력 2013-08-01 18:00
서울 효창동에 살았던 직장인 윤모(38)씨는 얼마 전 마포구로 전셋집을 옮겼다. 2년 전 2억4000만원에 전세로 아파트를 구했지만 올해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자 집주인이 1억원 가까이 전셋값을 올려 불렀기 때문이다. 윤씨는 “살던 집이 마음에 들고 아이까지 생겨 재계약을 하고 싶었지만 집주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값을 불러 이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윤씨처럼 다른 지역에 전셋집을 구한 경우는 상대적으로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 개포동 G부동산 관계자는 “전세의 경우 대부분 재계약을 선호해 매물이 부족하다. 찾는 사람은 있지만 내놓는 사람은 거의 없어 거래도 뜸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전셋값이 자고 일어나면 오르고 있다. 통상 봄·가을 이사철에 상승하던 전셋값이 비수기인 여름철에도 지속 상승하면서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전세가율)도 이미 60%를 넘어섰다. 과거 전세가율 60%는 전세에서 매매로 전환하는 기준점이 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전셋값 폭등에도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옮겨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KB국민은행 부동산 알리지 자료에 따르면 2009년 3월 전국 전셋값은 전월 대비 0.08% 오른 이후 지난달까지 한 번도 하락하지 않고 53개월 연속 상승했다. 이 기간 누적 상승률만 33.01%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전국 매매가는 11.1% 상승하는 데 그쳤다. 서울로만 한정할 경우 매매가는 오히려 1.53% 하락했다.
전세가 상승과 매매가 하락이 겹치면서 전세가율도 지속 상승해 왔다. 한국감정원이 지난 3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주택의 전세가율은 평균가격 기준 60.6%로 전월보다 0.3% 포인트 상승했다. 유형별로는 아파트가 67%에 달해 70%에 육박했고, 연립주택(62.4%), 단독주택(42.8%) 순이었다.
이처럼 전세가율이 60%를 넘어서면서 전세가와 매매가의 격차가 줄고 있지만 좀처럼 매수세는 형성되지 않고 있다. 아파트 전세가율이 70%에 육박했던 2001년 앞뒤로 집값이 오름세로 돌아섰던 것과 다른 흐름이다. 2001년 가을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69.5%로 70%의 문턱까지 갔다.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도 64.6%로 전세가와 매매가의 격차가 줄어들자 매매 수요가 발생했다. 이어 전세가 상승률은 차츰 둔화된 반면 매매가는 뛰었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당시와 많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2001년의 경우 주택 공급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98년 외환위기(IMF) 사태 이후 경기가 회복세였다. 반면 최근의 상황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경기 회복세에 대한 기대감이 낮다. 집값이 상승 반전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그 어느 때보다 낮다.
최근 몇 년간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전셋값 자체에 대출 비율이 높아 쉽게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거래세, 보유세 등 각종 비용에다 추가 대출로 인한 이자 부담을 상쇄해줄 만큼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없는 상황에서 매수세 유입은 힘들다는 것이다.
오히려 올가을 전세가 상승으로 인한 전세난이 더욱 심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전의 경우 통상 연도별 전세가율은 새 학기 시작 전을 포함한 봄, 가을에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2009년 이후에는 연말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추세다. 매수세 감소로 살고 있던 전세를 재계약하는 경우가 많고,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바람에 공급도 줄고 있다.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가을이나 내년 신학기 직전에는 2011년의 전세대란 재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2011년과 같은 전세가 상승률은 아니지만 올가을 전세난은 어느 정도 불가피해 보인다”며 “단기간에 매매 수요를 끌어올리기 쉽지 않은 만큼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물량을 줄이는 방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길 임세정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