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연명치료 중단, 생명경시 풍조 부르지 않도록

입력 2013-08-01 18:43

가족 결정과 의사 판단 검증할 감시기구 검토해 볼만

대통령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연명의료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특별법으로 제정해줄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고 임종 단계에 접어든 환자에 대해 일정한 절차를 거쳐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연간 3만여 명에 이르는 연명치료자 가운데 임종과정 환자 가족들의 심적·경제적·시간적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이유다. 대법원이 관련소송에서 연명치료 중단의 법제화를 권고한 것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이번 위원회의 권고는 동서양 공히 인명재천(人命在天)으로 여기는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발상이 시작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환자의 뜻을 추정하거나 대리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족과 대리인에 의한 의사표시를 폭넓게 인정한 것은 자칫 환자의 생명권 경시로 이어질 수 있다.

권고안에 따르면 환자가 이성적으로 판단해 의사와 상의를 거쳐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가 있거나, 사전의료의향서(AD)의 경우 의사가 확인하면 이것들을 환자의 뜻으로 인정한다. 환자가 의사를 밝히지 않았어도 가족 2명 이상이 환자의 뜻에 대해 일치하는 진술을 하는 경우 전문의 1명을 포함한 의사 2인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돌이킬 수 없는 말기 상황에서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환자가 연명 의료에 대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추정할 수도 없다면 가족 모두의 합의나 법정 대리인에 의한 결정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단, 이 결정 역시 의사 2명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대리인이 없으면 병원윤리위원회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큰 논쟁거리는 환자의 의사를 전혀 추정할 수 없을 때 가족 전원의 합의나 대리인에 의한 의사표시가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냐는 것이다. 경제적 곤란 등의 이유로 가족들이 입을 맞추는 경우 본인의 의지가 왜곡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종교계 일각에서는 추정이나 대리인에 의한 의사표시를 인정하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위배되고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대리인조차 없는 고아, 독거노인, 무연고자나 노숙인 등은 병원윤리위원회의 중단 결정만으로 생명권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 병원윤리위원회는 병원이 꾸리기 때문에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본인의사의 추정이나 대리결정 과정에서 의사들의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그밖에도 임종과정 여부의 판단이나 연명의료계획서 작성과정 등에서도 의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의사협회는 현재의 의료기술상 충분히 공정한 판단이 가능하다는 입장인 반면 환자단체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연명치료 중단결정의 적절성과 공정성을 재확인하는 별도의 공적 감시기구를 두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최종 지침은 인간의 존엄을 끝까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폭넓은 인위성이 보장되면 생명경시 풍조가 싹트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