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재중] 장외투쟁의 명분과 실리

입력 2013-08-01 18:22


보통 7∼8월은 하한정국(夏閑政局)이어서 여의도 정가는 휴식기에 들어간다. 그러나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국가정보원 국정조사 증인채택 협상이 결렬돼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선언한 데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실종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더해져 정치권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민주당은 비상체제에 돌입했고, 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천막 의원총회를 열었다. 당내에선 촛불 시위까지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원내외 투쟁과 협상을 병행한다고 했지만 당분간 ‘길거리 정치’가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정치사를 보면 야당은 여당의 독주에 맞서 숫자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장외투쟁을 선택해 왔다. 내부 결속을 다지고 야성(野性)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김 대표는 31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민운동에 나서겠다”고 했다. 국민의 편에 서서 장외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기자회견문에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11번 등장한다.

민주당이 내세운 명분은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진실규명과 국정원 개혁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국민 여론도 민주당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모노리서치가 지난달 11일 전국 성인남녀 10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99% 포인트) 응답자의 54.4%가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의 활동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답했다.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응답은 39.2%였다. 여러 대학의 교수들과 총학생회도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헌정질서 파괴라는 시국 선언을 했다.

사상 처음 실시되는 국정원 국정조사의 목적은 국정원 직원의 대선 개입 및 경찰의 축소수사 의혹 등 실체를 밝히고,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청문회 출석이 불가피하다는 데 여야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전·현직 국정원 직원을 상대로 한 매관매직 의혹과 국정원 여직원 인권침해 의혹을 부각시키면서 국정조사에 소극적으로 임해 왔다. 일부 새누리당 특위 위원은 국정조사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휴가 타령을 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속셈은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을 증인으로 채택해도 야당이 요구하는 동행명령장 발부에 합의해주지 않으면 당사자들이 불출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증인신문을 무산시키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국정원 개혁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민주당도 노림수가 있다. 검찰이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한 뒤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새누리당의 NLL 대화록 열람 공세에 말려 실기(失機)한 것에 대한 강경파의 불만을 잠재우고, 장외투쟁을 정국 반전의 카드로 활용하려는 전략이 읽힌다. 10월 재보선을 앞두고 잠재적 경쟁자인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세력화를 견제하면서 제1야당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포석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대선불복 심리로 접근한다면 장외투쟁은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게 될 것이다. 국민의 선택이 내려진 이상 대선 결과에 승복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진실규명과 국정원 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는 데 장외투쟁의 초점을 맞춰야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재중 정치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