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이주 한인들의 수난과 비극 재조명… 김윤배 두번째 장시집 ‘시베리아의 침묵’

입력 2013-08-01 17:26 수정 2013-08-01 17:37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긴 호흡의 서사시로 다뤄온 김윤배(69·사진) 시인이 ‘사당 바우덕이’(2004) 이후 두 번째 장시집 ‘시베리아의 침묵’(문학과지성사)을 냈다.

1장 ‘아무르 만의 안개’, 2장 ‘신한촌의 분노’, 3장 ‘라즈돌리노예 역의 어둠’ 등 모두 아홉 개 장으로 구성된 시집은 19세기 말 두만강 너머 러시아 땅으로 건너간 연해주 한인 이주민들이 겪었던 지난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무산의 기막힌 사내/ 경흥의 서러운 사내/ 함경도 농민 열세 가구 이끌고/ 1863년, 국법 어기며 월경 감행했다/ 목숨 건 월경이었다/ 달빛은 설원을 서럽도록 차갑게 비추고 있었다/ 지친 그림자 설원 위에 흔들리고 흔들렸다”(‘아무르 만의 안개’ 부분)

무산과 경흥의 사내는 각각 사료에 나오는 최초의 이주민 최운보와 양응범을 지칭한다. 이들은 이주민들과 함께 연해주 지신허에 정착하지만 이후 속속 도착하는 수많은 이주민들을 지신허 좁은 땅에 수용할 수 없어 좀 더 너른 땅인 수이푼(추풍)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귀화인과 비귀화인 사이의 알력은 양반과 상놈 못지않은 계급갈등을 촉발한다.

그 즈음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다. 이주민들은 러시아 황제를 지지하는 백군과 볼셰비키를 지지하는 적군으로 분열되고 세월은 급박하게 1937년으로 치닫는다. “1937년 9월은 막막한 어둠이다/ 어둠을 찢고 러시아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사내는 그의 초라한 목조주택에서 체포되었다/ 목조주택은 어둠 속에 주저앉았다/ 사내의 깊은 서재가 마지막 빛이었다”(‘라즈돌리노예 역의 어둠’ 부분)

사내란 소설 ‘낙동강’의 작가 조명희를 지칭하지만, 1장에서 3장까지 ‘사내’ 혹은 ‘사내들’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는 1937년 스탈린 명령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는 상황에서부터 이주민 처녀 예카테리나에게 옮겨간다. “예카테리나는 이삿짐 속에서 삽을 찾아 토굴을 팠다/ 마른 땅은 그녀의 삽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노역은 시간을 더디게 했다/ 그녀의 손에 물집이 잡히고 피가 맺혔다”(‘부슈토베의 까마귀 떼’ 부분)

김 시인은 1일 전화통화에서 “장시를 쓰기 위해 2011년 8∼9월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일대를 답사했다”며 “후반부에 예카테리나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그 이름이 이주 한인 여성들의 가장 흔한 러시아 이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