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봉쇄된 ‘아파트 단지’… 그 담장을 허물라
입력 2013-08-01 17:29
아파트 한국사회/박인석/현암사
한국의 ‘아파트 불패 신화’는 왜 꺼지지 않는 것일까. 주변을 돌아보면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자그마한 텃밭 키우며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은데. 단지별로 다니는 통학버스 덕에(?) 유치원생조차 친구를 “무슨 아파트 몇 단지 사는 애”라고 소개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복도 맞은 편 이웃과 마주치는 것마저 껄끄러워하는 삭막한 일상 풍경에 우리는 정말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
명지대 건축학부 박인석 교수가 수십 년 만에 한국인의 삶의 방식을 바꿔버린 ‘아파트 미스터리’에 대해 ‘단지 개발 전략’을 토대로 답을 내놨다. 박 교수는 2011년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박철수 교수와 함께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으로 이사 간 경험을 기록한 책 ‘아파트와 바꾼 집’으로 주목받은 아파트 문제 전문가다.
그는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 주목해야 한다”며 아파트 단지를 열악한 ‘도시 공공 공간 환경’이라는 사막 속에 자리 잡은 ‘사설 오아시스’라고 규정한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시작된 한국의 주택 정책은 공원, 놀이터, 국지도로 등 각종 편의시설을 아파트 단지 안에 포함하는 형식의 단지 개발 형태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해야 할 공공 공간 개발은 주택공사와 건설업계로 넘겨졌고, 고스란히 아파트 소유자의 부담이 된 것이다.
도시 공간이 제공하지 못하는 녹지와 오픈 스페이스를 충족시켜주는 아파트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한국의 아파트는 철저히 ‘사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유럽의 아파트가 저렴한 임대료의 공공임대주택으로 도입되면서 쾌적하고 위생적인 실내 공간(집)과 옥외 공간 환경을 통해 주민의 공동생활을 지원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거주자들이 쾌적한 실내 공간과 옥외 공간을 모두 누리고 싶어 하자 건설사들은 ‘전용 공간 확보’를 최우선 전략으로 취한다. 유난히 넓고 밝은 집, 이른바 긴 전면 폭의 평면 공간을 확보한 아파트 형태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긴 전면 폭 때문에 동들이 나란히 줄지어 서게 되면서 옥외 공간이 답답해지는 문제는 시야 확보를 위한 고층화로 풀었다. 고층화 전략은 단지 내부의 부대시설 확보에도 도움이 됐다.
발코니 역시 전용 공간 확보를 최우선시한 결과물이다. 유럽에선 아파트 발코니가 화분을 키우는 등 개성을 표출하고 자연스레 이웃과 접촉하는 공간. 하지만 한국의 아파트 발코니는 철저히 실내 공간을 확장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고, 획일적인 아파트 외형의 주범으로 꼽히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복도형 대신 계단형 아파트가 각광받는 이유 역시, 전용 공간 때문이다.
결국 TV 광고에 등장하는, 쾌적한 환경을 단지 안에 모두 갖췄다는 초고층 브랜드 아파트의 출현은 이런 욕구의 총체적 결집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화는 단지 담장을 높여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단지 봉쇄’ 현상으로 이어졌다. 차로는 물론 걸어서도 옆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가는 일은 점점 어렵다. 공동체 생활양식 붕괴와 이웃과의 소통 부재를 가져온 건 아파트 자체라기 보다 ‘아파트 단지’였던 셈이다.
해법은 무얼까. 저자는 ‘단지 해체만이 살 길’이라 말한다. 하지만 거창한 대책보다 실현 가능한 ‘작은 일’부터 할 것을 제안한다. 새시로 막혀버린 발코니를 여는 것부터 하자는 것이다. 1층 전용 마당, 마당형 발코니, 포치형 현관 등 다채로운 공간 구조를 통해 이웃과 만날 기회부터 가져볼 것을 제안한다. 아파트 담장을 허물고 담장과 외부 공간이 만나는 경계부에 상가나 부대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아파트 담장을 허무는 것도 방법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작은 골목길을 더 많이 만들 수도 있다.
저자는 단지 전략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로 ‘아파트에서 사는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집값이 떨어지면 손해’라는 사고방식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또 남향 선호 현상 등 한국에서만 보이는 특징을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가령, 남향 선호 현상은 한국과 유럽의 일조량을 비교해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는 것. 한국은 일년 사계절 내내 햇볕이 좋아 계절별 일조량 차이가 큰 유럽과 달리 햇볕 양이 부족하지 않다. 자연히 햇볕의 질을 따지게 됐고, 낮 시간 적당한 깊이로 들어오는 양질의 햇볕을 확보할 수 있는 남향을 선호하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처럼 모두가 아파트에서 탈출할 순 없지만, 좀 더 살맛나는 아파트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넌지시 묻는 듯하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