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감언이설로 대출 유혹, 생존마저 위협하는 상환 압박 ‘쐐기’

입력 2013-08-01 03:58

금융 당국이 불공정 채권추심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은 금융회사의 채무 변제 압박이 생존권을 침해할 정도로 심하다는 원성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공정 채권 추심을 낳은 보다 실체적인 원인은 제2금융권에 만연한 무감각한 빚 만들기 관행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출 실적을 높이려는 금융회사, 집요한 악덕 대출 중개업체,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대출 신청자들이 모여 만든 서글픈 자화상이라는 얘기다.

국민일보가 31일 접촉한 저축은행·대부업계의 대출채권 추심 직원들은 “불공정 채권 추심은 사라져야 할 부끄러운 관행”이라면서도 “이는 금융회사와 중개업체, 무분별한 대출 신청자들의 공생관계가 낳은 괴물”이라고 언급했다. 제2금융권은 상환 능력을 엄밀히 판단하지 않고 무리하게 대출을 승인해 주고, 급전이 필요한 이들은 빚으로 빚을 막으며 더 큰 부채의 늪에 빠지게 된다는 진단이었다. 이들은 “‘배 째라’로 나오는 대출 신청자들의 자세도 문제”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도처에서 감언이설로 빚을 권유하는 이들이 불공정 채권 추심의 시발점이다. 대출 중개업체들은 무직자들에게 ‘직업 세탁’을 해 주며 빚을 얻어다 준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 3곳에서 PL(개인신용대출) 부서 근무를 했다는 백모(33)씨는 “한 회사에서 유독 연체자가 수두룩하게 발생해 이상한 낌새를 느낀 적이 있다”고 밝혔다. 백씨는 전화를 걸어 아무 이름이나 대며 근무 여부를 물어봤고, 회사에서는 하나같이 “근무는 하는데 휴가 중”이라고 둘러댔다고 한다.

서류상으로는 슈퍼마켓이나 주유소에서 근무하는 사람인데, 추심 직원이 확인해 보면 외근직이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등 웃지 못할 사례도 많다. 한 연체자로부터 무직자라는 실토를 들은 백씨는 서류의 직장 전화번호에 연락해본 뒤 대출 심사의 허술함을 절감했다. “생산직에 계시는 분인데 전화 통화가 곤란하다”는 대답을 들은 것이다. 백씨는 “연락이 두절된 연체자의 직장 주소를 찾아가 봤더니 공터였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채권 추심을 당하는 이들은 여러 금융회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빚을 진 경우가 많아 채권 추심 직원끼리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신협의 한 지점에 근무하는 양모(29)씨는 “추심 시즌인 월말이 되면 연체자를 달래러 직장으로 쌀이나 케이크를 사들고 가는데, 종종 다른 금융회사의 추심 직원들과 만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채권 추심에 시달리는 사람은 다시 빚 유혹에 넘어가는 때가 많다. 상담만 받더라도 대출자의 개인정보가 업계에서 공유되기 때문이다. 대부업 추심 경력이 있는 이모(30)씨는 “대형 대출 중개업체는 해마다 폐업신고를 내면서 상호명을 바꾸고, 1000여개 가까운 하청업체를 둬 정보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모르는 전화번호에서 빚 권유가 계속되는 이유다.

이씨는 “금융회사들이 먼저 상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출을 엄격하게 승인해 주는 것이 불공정 채권 추심으로 겪는 피해를 원천 차단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