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중단 입법 권고… 생명권 경시 논란일 듯

입력 2013-07-31 18:08 수정 2013-07-31 22:16


국가생명윤리심의위 ‘환자결정권 제도화안’ 채택 의미

이르면 올 하반기 환자의 의사에 따라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될 전망이다.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 환자의 법적 대리인과 가족 모두의 합의 등에 따라 연명 의료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위원장 김성덕 중앙대의료원장)는 31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산하 특별위원회가 지난 5월 마련한 ‘연명 의료의 환자결정권 제도화안’을 심의하고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권고했다. 제도화가 이뤄지면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결정으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길을 법적으로 보장받게 된다. 하지만 환자의 뜻을 추정하거나 대리 결정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생명권 경시 등 남용 위험에 대한 논란이 있어 입법화 작업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위원회 안 대부분 수용=국가생명윤리심의위는 특별위원회의 권고안을 대부분 채택했다. 단 기존 ‘무의미한 연명 치료의 중지’에서 ‘연명 의료의 환자결정권 제도화’로 명칭이 바뀌었다. ‘무의미’라는 말을 빼고 ‘치료’라는 표현은 ‘의료’로 변경했다. ‘치료’가 ‘회복 가능성’을 암시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중단’도 부정적 어감이라 ‘결정’으로 바꿨다. 연명 의료 중단 대상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 했다. 중단 가능 연명 의료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등 전문 의학 지식과 기술 등이 필요한 특수 의료행위에 한정한다.

환자가 이성적으로 판단해 의사와 함께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POLST)나 이전에 쓴 생전 유서 등 사전의료의향서(AD)를 작성했다면 이를 환자의 의사로 인정한다. 환자가 의사를 밝히지 않았어도 가족(배우자, 직계존비속) 2명 이상이 환자의 뜻에 대해 일치하는 진술을 하면 의사 2인(담당 의사가 아닌 전문의 1인 포함)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 연명 의료 중단을 인정할 수 있다.

환자가 연명 의료에 대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추정할 수 없다면 적법한 대리인(후견인, 성년 후견인, 법정대리인 등)과 가족 모두가 합의해야 연명 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이 결정 역시 의사 2명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대리인이 없으면 병원윤리위원회가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 공은 복지부로=보건복지부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 권고안을 토대로 올 하반기 내에 정부 입법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권고안 마련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여러 쟁점을 입법 과정에서 보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 가장 큰 논쟁거리는 의식이 없어 환자의 의사를 전혀 추정할 수 없을 때다. 이 경우 가족 합의와 대리인의 결정만으로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비록 가족 전원의 진술이 일치된 경우라 하더라도 의사가 이를 환자의 뜻으로 추정해 인정할 수 없다. 경제적 문제 등으로 가족들이 입을 맞추는 등 남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리인조차 없을 경우 결정 권한을 병원윤리위가 갖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가족이나 친지가 나타나지 않는 무연고자나 노숙인 등은 병원윤리위의 중단 결정만으로 생명권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윤리위는 의료기관이 꾸리기 때문에 아무래도 판단의 객관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다. 현재 병원윤리위를 설치·운영 중인 의료기관 수가 적고 회의가 자주 열리지 않는다는 점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기관별로 들쭉날쭉인 병원윤리위의 수준을 높이는 등의 보완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자단체는 사전의료의향서 등의 진정성과 추정 의사의 확인 등을 다룰 연명의료결정위원회 같은 제3의 공적기구 설치를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호스피스·완화의료의 활성화, 죽음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 임종 과정 환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의사들에 대한 교육 등 연명 의료 제도화를 위한 사회적 기반 조성도 동반돼야 한다. 가톨릭계는 제도화할 경우 자칫 안락사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