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전석운] 청소년 홈리스 정부는 뒷짐
입력 2013-07-31 17:49 수정 2013-07-31 11:08
미국에서는 홈리스 청소년의 성공 사례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리즈 머레이(33·여)도 그중 한 명이다. 가난한 약물중독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15세에 홈리스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녀는 뒤늦게 공립대안학교에 등록한 뒤 뉴욕타임스의 장학금을 받고 하버드대에 진학했다. 카디자 윌리엄스(22·여)는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12개 학교를 옮겨다니며 거리의 쓰레기봉투더미에서 잠을 청한 노숙자의 딸이었지만 학업을 그만둔 적은 없었다. 하버드대 입학사정관은 “카디자를 합격시키지 않으면 제2의 미셸 오바마를 놓치는 것”이라고 강력 추천해 합격시켰다. 첼리사 피어스(17·여)는 노숙자 보호소를 옮겨다니면서 올해 조지아주 리버데일의 찰스 드류 고교를 수석 졸업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성공 스토리를 만나기 어렵다. 가정이 제 역할을 못해 거리로 쫓겨난 아이들은 대부분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중도 탈락한다. 학교는 가출과 무단결석이 잦으면 자퇴를 종용한다. 한국에서 홈리스로 전락하는 청소년은 주거불안에 처하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서비스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저임금 노동은 물론 성매매도 서슴지 않는다. 가출청소년들끼리 모여 사는 가출팸은 범죄의 온상이다.
주무부처 7번 바뀌며 정책 표류
‘아이 하나를 길러내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 올바로 성장하기까지 부모뿐 아니라 마을공동체가 양육의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가정이 붕괴된 아이라면 공동체가 더욱 세심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마을의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내려면 촌장의 의지와 마을 장로들의 성원이 핵심이다. 우리 공동체는 어떤가. 촌장과 장로 격인 대통령과 정부, 국회는 홈리스 청소년을 돌보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가.
박근혜정부는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학교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불량식품’을 우리 사회의 ‘4대악’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이 4대악이 중첩적으로 나타나는 대상이 바로 홈리스 청소년이다. 이 아이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전한 사회’는 헛구호에 그친다. 홈리스 청소년들을 방치하면 이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이, 나아가 우리 사회의 안전이 위협받게 된다.
정부의 무관심과 역량 부족을 의심하는 건 청소년 정책을 관장하는 주무부처가 있기나 한지 헷갈릴 만큼 존재감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한때 정부는 ‘청소년위원회’를 총리실 산하에 독립 기구로 두어 청소년 ‘육성’과 ‘보호’ 정책을 총괄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 들어 청소년위원회를 없애고 보건복지부로 청소년 업무를 통폐합시켰다가 2년 만에 다시 여성부로 이관했다.
역대 정부에서 청소년 정책은 이 부처 저 부처로 떠돌아다니는 천덕꾸러기였다. 청소년 정책을 관장한 역대 주무부처를 꼽아보면 내무부(현 안전행정부), 문교부(현 교육부), 체육부, 문화부, 국무총리실, 보건복지부, 여성부 등 7개다. 청소년 정책 자체가 홈리스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분산된 관련 업무의 조율 필요
청소년 정책은 여성부 혼자 총괄하기가 어렵다. 여성부는 복지부로부터 넘겨받은 청소년쉼터조차 적극적으로 확대하지 못하고 현상 유지에 급급한 실정이다. 독자적인 정책수단과 조직도 거의 없어서 다른 부처의 협조 없이는 업무 수행이 쉽지 않다. 사실 청소년 업무는 여성부보다 교육부(학교), 보건복지부(보건소·병원), 안전행정부(경찰), 법무부(검찰) 등 다른 부처에 더 많다. 청소년 정책의 중요성과 여러 부처로 분산된 업무의 조율 필요성 등을 감안하면 대통령 직속 청소년위원회를 둬야 한다. 홈리스 청소년들을 감싸 안는 노력은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 표명에서 비롯된다.
전석운 정책기획부장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