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인규] 스마트그리드가 창조경제의 초석
입력 2013-07-31 17:50
잇단 원전가동 중단으로 올여름 사상 최대 전력난이 우려되는 가운데 전력공급의 안정성과 유연성 확보가 에너지 안보의 핵심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창조경제의 한 맥(脈)으로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친환경 에너지 혁신기술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스마트그리드’가 있다. 스마트그리드는 기존 전력망에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하여 공급자와 소비자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여 에너지 이용효율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으로서 환경문제와 전력수급난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더불어 향후 스마트그리드의 본격적인 보급 확산단계에 접어들면 비단 전력뿐 아니라 자동차, 화학, 기계 등 산업 전반에 걸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부는 세계 최초 국가 단위 스마트그리드 구축을 목표로 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관련 법령 제정과 지능형전력망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일련의 체제를 갖추었다.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2009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제주도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실증단지가 조성되었으며, 전력·ICT·에너지 등 각 부문의 168개 기업이 12개 컨소시엄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실증 데이터 분석 및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주력해 왔다.
실증사업의 주요 성과는 우선 지능형 전력계량 인프라(AMI)를 바탕으로 고객의 합리적인 에너지 이용 및 수요반응(DR)을 유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 점이다. 또한 전력망 지능화를 통하여 송배전설비 고장 감소와 계통운영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전기차, 대용량 전력저장장치, 마이크로그리드 등 스마트그리드 사업화가 가능한 기술의 조기 표준화를 추진하였으며, 다양한 사업모델을 개발하고 실증하는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부 상용화 모델의 경제성 부족, 참여기업 간 설비표준화 미흡 등의 문제에도 동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국이 국내를 넘어 세계 스마트그리드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첫째, 산·학·연이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공고히 하여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제로섬 방식의 무한 경쟁으로는 성공적인 가치창출은 요원하다. 참여 기업 간 상호호혜적인 협업을 바탕으로, 중소기업까지 아우르는 동반성장 프로그램 운용 등을 통해서 투자 활성화를 담보하게 된다면 전력, 통신, 가전 등 산업의 융·복합을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신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대규모 해상풍력 계통연계기술, 효율적인 전력저장장치 운영기술 등 핵심기술 개발에 앞장서야 한다.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력 제고는 사업모델의 상용화를 가능하게 하고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첩경이다.
셋째, 전력회사를 중심으로 한 유기적인 사업추진이 필수적이다. 기술 표준화와 경제성 확보 등 스마트그리드 사업의 당면과제를 유연하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심점을 잃은 사업추진은 방향성을 잃고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스마트그리드 사업은 이제 본격적인 닻을 올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긴 항해의 목적은 결국 전력망 안정과 국민적 편익이다. 단기간의 수익창출을 위한 과도한 경쟁으로 자칫 이러한 본질적 가치를 간과하는 우를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민의 참여와 이해기반을 토대로 거시적 안목으로 전력망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보장하는 체계적인 인프라 구축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 마라톤 경기와 같이 긴 호흡으로 페이스를 조절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성공적인 사업추진 기반을 굳건히 다져 나가야 하겠다.
최인규 한국전력 개발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