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테러 라이브’ 주연 하정우 “시나리오보다 더 사람냄새 나게 하는게 내 역할”

입력 2013-07-31 17:36


‘더 테러 라이브’(감독 김병우)는 배우 하정우(35)의 존재감이 극대화된 영화다. 97분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혼자 이끌고 간다. 생방송 스튜디오라는 한정된 공간. 한강 다리를 폭파한 테러범이 앵커 역을 맡은 하정우에게 전화를 걸어오고, 이 과정이 전국적으로 생방송된다. 좁은 공간, 관객이 이름을 알만한 배우는 겨우 두세 명. 그런데도 긴장감과 집중력은 블록버스터 못지않다. 이 모든 중심에 하정우가 있다.

그를 3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차기작 ‘군도: 민란의 시대’ 촬영 때문에 머리를 삭발한 그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했다. 10년 단위로 굵직한 인생 계획을 세워 때로는 과감하고 무모한 도전도 서슴지 않는 이 배우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충분히 즐기는 듯 보였다.

# 국민 앵커로 변신… 감정의 극한을 넘나드는 연기

하정우는 “시나리오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영화 내내 같은 공간, 한 명의 배우가 나온다. 불리할 수도 있는 설정인데 속도감이 있고 참신했다”고 말했다. ‘원 톱’인 만큼 부담도 컸다. 어떻게 하면 관객이 지루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영화는 워밍업 없이 처음부터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시작하자마자 사건이 일어나고 생방송이 진행되기 때문에 초반밖에 캐릭터를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현실적이고 승부욕이 강한 캐릭터다.”

테러범과 전화 연결이 된 후 앵커의 계산과는 다르게 사건이 흘러간다. ‘멘붕’의 리액션이 필요했다. 감독은 각 장면마다 앵커의 심리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그래프로 준비해 건넸다. 극도의 긴장으로 눈 주위가 떨리고 침을 꿀꺽 삼키는 등 1, 2초 안에 표현할 수 있는 연기에 집중했다. 그는 “연기하면서 원래 시나리오보다 인물을 입체적으로, 사람냄새 나게 보이게 하는 것, 그게 배우의 역할”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올해만 해도 ‘베를린’에 이어 ‘더 테러 라이브’, 감독 데뷔작 ‘롤러코스터’, 감독 겸 주연을 맡은 ‘허삼관 매혈기’까지. 그는 숨도 안 돌리고 질주 중이다. 가끔 “아이돌보다 더 바쁜 거 아니냐”고 묻는 이도 있다. “바쁘지만 그래도 틈이 나면 주로 걷는다. 시간이 나면 1박2일로 경기도 팔당까지 걸어가 아는 형 집에서 자고 다시 집에 걸어온다. 야구를 좋아해 새벽에는 미국 메이저리그 보고 저녁에는 프로야구를 본다. 가끔 심야영화도 보러간다.”

# 재미있는 영화 만드는 감독을 꿈꾼다

10월 개봉하는 ‘롤러코스터’는 첫 연출작이다. 감독은 배우와는 정말 다른 세계다. “배우는 영화의 한 부분이지만 감독은 전체를 이끌어야 되고 결정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와서 하루에도 100번씩 결정을 해달라고 한다. 대기업 회장이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내가 감독해보니 그 마음을 알겠다. 하하.”

감독을 하다가 연기를 해보니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감독이라는 자리는 고독하고 외롭다. 대사 한 줄, 장면 하나에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그동안 너무 철이 없었구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재미있는 이야기. “여름 밤 수박 한 통 먹으면서 킥킥대며 웃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 영화의 최대 미덕은 오락성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재미를 추구하다가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인간의 본능이다. 재미를 끝까지 유지하고 이야기하는 감독은 정말 배포가 큰 것이다.”

# 다작이 가능했던 힘… 일희일비 안 하기

2005년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로 본격 데뷔한 후 ‘두 번째 사랑’(2007) ‘비스티 보이즈’(2008) ‘추격자’(2008) ‘멋진 하루’(2008) ‘국가대표’(2009) ‘황해’(2010)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베를린’(2013)까지. 그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흥행도 견인해왔다. 그는 다작의 힘으로 영화에 대한 애정을 꼽았다. “일을 하면서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기쁘고 재미있는 게 조금 더 큰 것 같다.”

또 하나의 힘은 장기적인 인생 계획이다. 30대는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시기, 40대는 견고하고 노련한 배우가 되는 시기 등으로 굵직한 계획을 세운 만큼 차기작을 통해 승부를 걸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작품 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

결혼 계획? 물론 있다. 3년 뒤인 서른여덟에는 할 생각이다. 지금 만나는 사람은 없다. 그는 “서른아홉은 너무 급하게 쫓겨서 하는 것 같고, 마흔 넘으면 ‘에이, 그냥 마흔 다섯에 해야지’ 할 것 같아 서른여덟에 가려 한다”며 웃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